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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라진 내 친구의 단골집 2

전전술술

by 경주씨

서울은 얼마나 멀고도 먼가.

교보문고를 가보겠다고 새마을을 타고 네 시간 반 걸려 서울역에 도착해 내심 자연스러운 척 두리번거리지 않고 광화문에 도착하는 일이 처음 서울나들이인 지방민이 서울에 사는 친구를 생각이나 해봤겠냐고. 그런 내가 친구를 만나겠다고 앞뒤 없이 상경했다. sns가 막 활발해지던 때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이어진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언니가 신천에 살아서 신천을 처음 가봤다. 신천이 어디 붙었는지 알게 뭔가. 대학가가 몰려 있어 신촌은 알아도 신천은 얼마나 낯설고 낯선지.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해 2호선 신천에 내리라고 했다. 몇 번이나 되물어 다짐을 하듯 신촌이 아니고 신천을 가슴에 새기고 신천은 동네 통째로 언니네 집이 된다. 조심조심 도착한 동네는 강 건너 동네. 한강을 건너 도착해 다시 한강을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내 친구네 동네.

나중에 잠실새내가 되었는데 아 그렇네, 신천이구나.


어찌 생각하면 쌩판 남인데 언니는 두어 번 만나고 나를 어머니도 계신 집에 재워줬다. 뭘 믿고. 내가 사기라도 치면 어쩌려고. 하긴 그럴 주제나 되나. 언니네 집 소파에 기대어 앉아 어머니랑 나란히 동물농장을 보면 오후에는 전을 부쳐주시기도 했다. 저는 손님이잖아요 하며 천연덕스럽게 날름날름 밥만 잘도 받아먹었다. 뭉기적거리며 집에 가기 싫어 기차표를 세 번인가 네 번도 바꿔봤다. 언니는 강변을 따라 운전해 서울역에 바래다주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언니가 전화가 왔다. 신천시장에 끝내주는 집을 찾았다고. 전전술술.

그전에도 신천시장 안 양꼬치 집을 발견해 언니가 불러서 양꼬치 먹으러 갔었다. 나만 그랬겠나. 언니도 꽃피는 강변에 막걸리 먹으러 가자는 내 꼬드김에 부산에 왔던 것처럼 우리는 번갈아 서로를 불렀다. 그렇게 보고 싶었다. 보면 좋고 할 말은 어쩜 그렇게 많았나 몰라. MSN메신저가 사업을 접어 네이트 온으로 이사를 가는 동안만큼의 시간과 밀도로 촘촘하게 매일을 떠들었다. 일상은 미주알고주알이고 맛있는 안주와 술이 있다면 기어이 갔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소리를 했지만 물리적 거리가 멀지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매일 했다.


전전술술. 이름만 들어도 기똥차게 끝내주는 안주 한상이 그려지지 않음?

내 평생 이렇게 직관적이고 유혹적인 술집 이름을 본 적 없다. 퇴근길 시장에 들렀다 발견했다는 언니의 무용담에 입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으로 도착하는 막걸리와 전을 비롯한 끝내주는 안주 사진들에 홀려서 마음이 팔랑팔랑 너풀너풀 아이고 가야지 당장 가야지. 부산까지 유통이 안되던 서울장수막걸리와 전라도가 고향인 사장님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안주의 조합은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무슨 볶음이었나 무침이었나 이제는 다 까먹었다. 여하튼 양념이 너무 아까워 우리는 없는 공깃밥을 청해 양념에 밥을 비볐다. 사장님이 태연하게 무심히 걸어오셔서 기름병을 열고 휘리릭 두어 바퀴 둘러주신다. 들기름!!! 그 향이 코로 들어오는 순간 술이 뭐야 와구와구 양념에 비빈 밥을 싹싹 얼마나 맛있게 긁어먹었는지. 밥안주로 먹는 술맛에 길들면 도통 끝이 없다. 비 오는 날이면 전전술술에서 한 잔 하는 언니의 염장 사진이 도착했다. 그 사진이라는 게 대체로 어엿하게 담긴 한 그릇이 아니다. 먹다가 골려먹자 하고 보내는 언니를 생각하면 아이고아이고아이고 약 올라. 진심으로 나는 왜 거기 없나 안타깝다. 아이고 전전술술도 거기 있는 언니도 보고 싶다.


언니가 이사하고 얼마 뒤였나 전전술술도 문을 닫았다고 들었다. 한 번은 더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하지만 언니가 있어서 괜찮다. 언니가 있으면 어디라도 전전술술처럼 변한다. 언니가 가진 힘은 대단해서 어디라도 자기 공간처럼 만들어낸다. 언니가 신천 살다 강북으로 이사를 갔다. 눈길을 헤치고 강북 언니네를 처음 갔는데 한 십 년 살던 곳처럼 언니는 거기 있었다.


서울 살던 언니는 이제 남해에 신다. 마음이 훨씬 가깝다. 올봄 언니한테 택배가 도착했다. 박스를 열고 주저앉아 울었다. 냉이를 캐 하나 손댈 거 없게 다 손질해서 보냈더라고.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이겠어. 울음을 다잡고 후후 숨을 가라앉히고 언니한테 전화를 했는데 언니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또 울었다. 언니가 이름을 부르는데도 눈물이 안 멈췄다. 바스라질 것처럼 매일이 고달픈데 도착한 마음이 너무 귀해 그 냉이로 반찬해 밥 먹다가도 울었다. 올봄은 그래서 냉이만 생각해도 자꾸 왈칵한다.


들고 가야지 생각한 물건들이 하나둘씩 쌓인다. 가야지 언니한테 가야지. 요란 호들갑을 떨며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뻔뻔하게 언니가 해주는 밥만 홀라당 받아먹고 나는 손님이니까 하고 드러누워 낮잠이나 자야지.

멀거니 창 밖 바라다보며 그러고 있다 바다라고는 오며 가며 컴컴한 그 바다나 보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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