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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22. 2024

그럼 나는 멈출 거예요.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계속 너무 무던한 날들.

그자는 보통 주말이면 우리 집으로 놀러 와 나랑 밥 먹고 산책하고 차 마시고 술 마시고 곱게 지내다 갔다. 

11월, 어느 일요일. 나는 거래처 결혼식에 가야 했고 그자는 친구가 속한 산악회에 초대되어 가야 했다. 그자는 돌아온 저녁에 친구부부와 저녁 먹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했다.


결혼식은 솔직히 안중에도 없었다. 거래처 사장님 아들 결혼식에 회사 봉투를 전달하면 되는 일, 그저 단정하기만 하면 되는 일. 코로나 시즌 마스크만 쓰다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평소 안 입던 옷도 꺼내 입었다. 저녁까지 고운 상태를 유지할 욕심이 더 컸다. 핑계김에 하는 단장이 얼마만인가.


저녁이 되었다. 약속 장소 근처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시외를 다녀오는 산악회 버스는 주말 저녁 부산진입에 시간이 꽤 걸렸다. 찻집에 들어가 차분히 차 한잔 마시며 기다렸다. 차분하다 썼지만 아침부터 종종거리느라 사실 한 끼도 못 먹었었다. 나중에는 어쩐지 좀 긴장이 되기도 했다. 마음을 무르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그만 마침표를 찍거나 계속 얼굴을 보는 사이이거나 어느 방향이든 결과가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두리뭉실하게 그저 같이 걷는 사이는 그만하고 싶었다. 결혼식을 핑계 삼아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사실 좀 비장했다.


친구부부의 환대는 따뜻했고 너무 단장한 내 모습에 그자는 흠칫 놀라는 느낌이었다.

"낮에 결혼식이 있었거든요."

처음 보는 친구부부와 인사를 나누며 차려입은 모양새를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넘어갔다. 일부러 좋아하는 사람의 친구를 만나려고 꾸민 건 아니에요 하는 뉘앙스를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사실 그랬지만  솔직히 그건 좀 너무 촌스럽잖아;;;


친구부부는 너무 당연하게 우리가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속이 탔다. 그쵸 저도 그 확신이 필요한데 이 자리는 너무 당황스럽네요. 말은 못 하고 그저 아~ 네~ 하며 상냥하게 웃었다.  그자에게 얘기 많이 들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너무 만나보고 싶었다고 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도대체  왜 내게는 그렇게 그냥 무던해놓고 두 분의 이 당연한 듯한 반가움과 호기심을 넘나드는 다정한 흐름은 뭔가요? 고깃집은 시끄러웠고 두 사람이 하는 얘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고기도 술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나는 술 마시고 택시 타면 멀미가 난다. 그날은 속이 하나도 울렁거리지 않았다. 머릿속은 너무 복잡했다. 아니 왜 나한테는 말을 안 하는데??? 내가 필요한 건 그 말 한마디라고. 확신의 한마디. 택시 안에서 내가 먼저 손을 잡았는데 가만히 또 순둥순둥 손은 잡고 있는 이 남자. 친구 부부에게 나를 누구라고 얘기했냐고 물었다. 그리고 끝내 말을 안 하는 이 남자.


밤을 거의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월요일 출근을 했다. 이제는 더 망설이면 안 된다. 여태 미루고 미룬 확인이 필요했다. 일은 복잡했고 힘들어 반사적으로 그자와 같이 있는 시간은 더 안락하고 달달했다. 그 흥에 취해 이도 저도 아닌 사이로 너무 오래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마음이 흔들리고도 반년도 더 지났나 보다. 여기서 그냥 더 가는 건 너무 모양이 우습잖아. 어중간하게 더는 맘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자가 좋았지만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니까. 종일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도 담아뒀다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어제 그 분위기를 지나고 나니 도저히 궁금해서... 어떤 마음이에요?


아직도 유니콘이에요?

우리는 뭘까요?


안 그래도 생각 복잡할 텐데 부담스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다 보니 뭔가 타이밍을 놓치고 그냥 흘러와서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을 종종 했지만 내가 좋아하니까 괜찮다고, 굳이 일부러 말 꺼내 부담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나는 어제를 지나와서 이제 그냥 괜찮아하던 뒤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거 알죠?

그냥 유니콘이라면 정신 차리라고 당근이라도 흔들어줘야 해요. 그거 아니라고. 그냥 친구라고.

그럼 나는 멈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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