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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Feb 15. 2024

시작 : 마흔 둘,

엄마가 떠난 나이 마흔, 둘,


나는 이제 엄마보다 나이가 많다.

나는 평생 마흔둘은 안 오는 나이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마흔둘보다 더 오래 살 줄도 몰랐다.


적극적으로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살 생각도 없었다. 막연하게 내 삶도 그즈음이면 끝이 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던 것 같다. 그건 어떤 감정이기도 하고 상태이기도 하고 덩어리였다가 버팀목 같기도 했다. 순간순간 잊고 살아도 그 감정은 늘 희미한 감각으로 내 옆에 있었다.  적당히 생생하고 적당히 시들했다.


나는 겨우 열다섯, 중학교 이 학년인데 말 그대로 경상도 장녀라 엄마가 돌아가신 후 고스란히 내 앞에 던져진 생활은 너무 현실이었다. 그저 매일매일 눈앞에 닥친 시간을 견디거나 살거나 스쳐 보내거나 하기 바빴다. 동생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고, 마누라 없는 태가 나지 말라고 아부지 옷은 다림질을 열심히 했다. 학교에 가서야 몸 안에 숨겨둔 감정들을 겨우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에 미처 하지 못한 설거지가 나를 기다렸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탈출이 간절했다. 다른 도시 대학의 기숙사 앞에는 연못이 있었고 언덕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마음에 들었다.  순전히 기숙사만 보고 진학을 결정했다. 겨우 대학생이 되었고, 그제야 본격적으로 생은 허무했다. 살기 바빠서, 의연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장녀니까  그런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두고 온전히 엄마를, 엄마를 잃은 내 감정을, 깊이 가라앉았다 살아 올라오는 뒤엉킨 감각을 드디어 애도할 수 있었다. 대체로 무기력했고 그래도 무기력한 것치곤 꽤 열심히 살았다. 앞뒤가 말이 틀어지는 기분인데 어쩔 수 없다. 나는 매 순간이 그렇게 흘러갔으니까.


마흔이 코 앞에 다가오면서 날짜를 꼽아보곤 했다. 얼마만 더 살면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아지네 하고.


2021년, 드디어 우리 나이로 내 나이가 마흔둘이었다. 새해의 시작부터 난 이제 엄마랑 동갑이구나 했다.

생은 생각보다 성실해서 어떤 식으로 살아왔든 몸에 시간을 남긴다. 드디어 시간을 채웠고 내 또래의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이제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 같다. 엄마는 더 이상 나이들 지도 늙지도 않으니까.


내가 마흔둘이 되고 보니 마흔둘은 그냥 마흔둘이었다.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는데 그냥 나 하나 거두고 사는 것도 이렇게 매일이 고단한데 마흔둘의 엄마는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냥 살아도 마흔둘인데 자식이 둘이니 그 마흔둘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나는 매일 야금야금 하루씩 엄마의 나이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 엄마의 기제사를 지낸 다음 날,

나는 이제 엄마보다 하루 더 나이가 많구나, 자각했다.

무덤덤하게 생각을 떠올리고 제기를 닦다 조금 울었다.


태어난 날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엄마에게서 왔으니까. 세포일 때부터 엄마 몸 안에서 머물렀으니까 그저 엄마에게서 분리되어 세상에 온 날이지 나는 엄마 안에서 내내 있었으니까. 엄마의 마지막만이 생과 사의 분기점이고, 우리의 이별이고, 내가 엄마보다 하루 더 사는 감각의 시작이다.


기억은 몇 가지 강렬한 것들을 두고 자꾸 사라져 간다. 희미하게 기억하다 모두 다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엄마를 기록해야지 생각을 한다. 마음이 바쁜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은 엄마를 기록한다는 건지 내 감정을 기록하겠다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여기저기 그때그때 쓰던 일기장, 혹은 인터넷 귀퉁이 어딘가 글씨로 사라진 감정들 속에 엄마, 우리 엄마 김복희씨.


나는 이제 엄마보다 나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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