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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Feb 22. 2024

가족사진

엄마를 기록하기로 한다.

1980년대 부산직할시 동래구 칠산동. 

아빠가 하던 사업이 쫄딱 망해 엄마는 배에 동생을 품고, 어린 나를 업고 이사 왔다고 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지금은 도로가 내성초등학교 근처 공터를 중심으로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있었다. 


시멘트로 마감된 마당은 사람들 발에 길이 나 햇빛이 쏟아지는 날이면 반질반질 윤이 났다. 안채인 주인집을 두고 사랑채처럼 늘어진 바깥채에 방 하나 부엌 하나 그렇게 세 집이 살았다. 우리는 그 가운데 방에 세 들어 살았다. 마당에는 수돗가가 있었고, 마주 보는 건물에는 연탄광과 화장실이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주변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거기, 내가 이해하던 세상의 전부가 거기였다. 

아직도 가끔 꿈에서 그 집을 본다.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다락과 세 칸짜리 장농, 테레비, 냉장고 살림은 단출했다. 아침이면 동생과 나 밥 먹여놓고 엄마는 출근했고, 우리는 그냥 풀어놓은 강아지 모양 온 동네를 누비고 자랐다.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아빠랑 엄마는 공장에서 만나 연애를 했다. 

둘이는 그때 치고는 좀 늦은 나이에 결혼을 결심했고, 가난했던 양가 사정을 봐서 그냥 살림을 차리고 살았었다. 그리고 아빠 나이 스물여덟, 엄마 나이 스물일곱에 나를 낳았다.

둘에게 직접 들은 얘기도 아니다. 아빠 회사 사람들이 집으로 놀러 왔는데 유난히 태가 좀 달라 보이는 사람이 나중에 보니 엄마였다고 고모가 그랬다. 토막토막 얻어 들은 이야기들을 이어 붙이기 바느질하듯 엮어서 돌아본다. 둘이는 사진관에서 찍는 그 흔한 결혼사진 한 장이 없었다. 어릴 때 무심코 왜 우리 집에는 엄마 아빠 결혼식 사진이 없냐고 물었을 때 아빠도 엄마도 난처한 얼굴이었다. 아마 이사하면서 없어졌다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 얼굴을 이해하는 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가족사진이 딱 한 장 있었다. 어린이날 무렵이었을까 생각만 해본다. 우리 집 마당, 주인집 안채를 배경으로 아빠는 나를 안고, 엄마는 동생을 안고 있었다. 젊은 아빠와 엄마, 동생과 내가 다 같이 있는 사진. 나는 큰 이모네 영주언니한테 물려 입은 청치마 조끼 투피스를 입었고, 동생은 손에 자동차였나 포크레인이었나 장난감을 갖고 있었다. 동생은 무릎이 깨져 빨간약을 발랐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었다. 

기억 속에 환하게 고정된 그 사진, 어쩐지 좀 행복해 보인다.  

카메라도 귀한 시절이었다. 누가 찍어줬을까? 아마도 주인집 아저씨 카메라였겠지? 암만 생각해도 어쩌다 없어졌을까. 학교에서 가족사진이 필요한 숙제를 하고 다시 갖고 왔을 텐데.  


아빠가 사업하며 진 빚을 갚아야 했다. 아빠랑 금강공원에 가서 찍은 사진에는 엄마가 없다. 통도사 계곡에 놀러 갔던 날에도 엄마는 없다. 회사를 다니는 아빠는 일요일이 있었는데, 엄마는 쉬는 날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갓난쟁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어린 나는 고모한테 맡기고, 갓난쟁이 동생을 업고 엄마는 다방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많아야 스물아홉이었을 엄마. 몸조리인들 제대로 했었을까. 온종일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설거지를 하고 나면 마디마디 안 아픈 곳이 있었을까. 스물아홉이 버텨서 마흔이 되도록 제대로 쉰 날이 며칠이나 되었을까. 


그렇게 번 돈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게 간절했을까. 엄마는 형제지간에 야박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외삼촌도 큰 이모도 엄마에게 돈 말을 했다 맘이 상했었다. 엄마는 꿈이 뭐였을까. 퇴근하고 왔는데 어린 내가 놀다 연탄불을 꺼트려 냉골에 동생이랑 엎어져 자고 있어 속이 썩어 문드러지게 야단치지 않아도 되는 아파트. 삼천만원을 모아 우성베스토피아 같은 아파트에 사는 꿈 말고, 진짜 엄마의 꿈은 뭐였을까. 


그런 엄마가 선교원 졸업식날에 와줬다. 전도관에서 있었던 졸업식 날, 설교대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엄마가 와서 너무 기뻤다. 소풍도 할머니랑 가고, 크리스마스 즈음 재롱잔치 날에도 못 왔지만, 졸업식에는 우리 엄마도 왔다. 어깨가 얼마나 으쓱했나 몰라. 나는 흰 바탕에 알록달록 색동이 둘러진 한복 위에 졸업식 까만 옷과 사각모를 쓰고 엄마는 딱 한 벌 있던 붉은색 한복을 입고. 나랑 둘이서만 찍은 사진. 동생이랑 셋이서도 찍고 다른 친구들 엄마들과 같이 나란히 서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행복한 날이다. 엄마가 왔어. 엄마가. 


나중에는 같이 놀러도 가고, 사진도 찍고 그럴 줄 알았지, 

내내 그렇게 일만 하다 그렇게 떠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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