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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Feb 29. 2024

국자

일상은 무던히 흘러 이제는 매일 엄마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끔 문득,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가난한 살림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엄마 물건이 겨우 국자다. 추억은 너무 멀고, 물성을 지난 것들은 너무 오래 잊혀져 있다. 하필이면 국자인가 생각해 보다 그래도 아직 가까이 두고 거의 매일 쓰니까. 


요새 나오는 국자들은 스테인리스라도 기계로 찍어 만들어 내고 연마 작업을 거쳐 출시한다. 두께가 아무리 얇다 해도 좀 뭉툭하다. 엄마 국자는 스뎅은 스뎅인데 사람 손이 닿은 느낌이다. 망치질로 살살 달래 펴 놓은 것처럼 아주 얇고 가볍다. 집에 다른 스뎅 국자도 생기고, 실리콘, 플라스틱 국자도 여럿이지만 지금도 엄마가 쓰던 국자를 쓴다. 손에 착~ 감기는 맛이 있다. 이 국자 아마도 나랑 연배가 비슷하겠지. 나랑 같이 동래 집으로 이사 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국솥에는 항상 그 국자가 걸쳐져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수도도 없었던 부엌 하나, 방 하나 단칸방 살림살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혀있는 풍경을 들여다본다.  


마당에서 안채를 바라보고 선 왼쪽 아랫채 가운데가 우리 집,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다. 

시멘트로 마감해 장판이 깔린 부뚜막에는 파란색 물통이 있었다. 물통과 호스로 연결된 연탄불 뚜껑이 보일러 역할을 한다. 뚜껑에는 손잡이가 달려있고 둥그스름한 보일러 안에서 물이 끓으면 호스를 통해 파란 물통으로 뜨거운 물이 들어가고 찬물은 다시 연탄불 뚜껑으로 들어가 무한 반복되며 뜨거운 물을 쓸 수 있었다. 이 물통도 처음에는 없었다. 더 오래된 기억을 들여다보면 연탄불 아궁이 위에 들통이 있고, 그 안에는 은근하게 데워진 뜨거운 물이 있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조리대에는 찬장하나. 스뎅 밥공기며 몇 없던 사기 접시가 유리문 달린 찬장 위칸에 정리되어 있었고, 아랫칸에는 양념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아랫칸 밑 찬장 다리 부분의 빈 공간에는 수저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 옆으로 석유곤로. 아랫부분 손잡이를 좌우로 돌리고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화구에 불이 올라왔다. 그게 무서워 난 근처도 못 갔다.  조리대 이래에는 하얀 뚜껑에 해바라기 비슷한 꽃이 그려진 프라이팬 세트가 기억난다. 그리고 양은냄비도 있었다. 몇 가지 플라스틱으로 된 바가지며 동근 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돌아서면 문이고, 돌아서면 방인 작은 집, 살림살이 몇 가지 되지도 않았다. 엄마는 깔끔한 사람이었다. 단출한 살림이 윤이 나도록 쓸고 닦았다. 할머니 집에 가서 자고 온 날이면 동생이랑 내가 늘어놓은 장난감이며 책들이 다 제자리에 들어있고 시멘트 부엌바닥은 바짝 말라 희게 빛났다.


그 좁은 부엌에서 엄마는 아침마다 김을 피우며 국을 끓이고, 맛있는 반찬들을 만들어냈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건 다 엄마 덕분이다. 곤로도 없던 시절에 연탄불 위에서 구워내던 카스테라 같은 것들. 폭신하고 달큰한 향이 코 끝을 스치는 기분이다. 엄마 주변을 늘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감탄했다. 어떻게 엄마는 만들어낼까?

부엌살림은 무궁무진한 탐구 영역이다. 유리그릇이 깨어지고 남은 고무 뚜껑이나, 짝 없는 플라스틱 그릇, 유리병이 깨지고 남은 철제 뚜껑 같은 짝 없는 소꿉살림에 엄마가 쓰는 도마와 그릇 같은 것들이 얼마나 탐이 났는지 모른다. 


내성국민학교를 건너다보는 공터를 따라 쪼로록 늘어선 슈퍼와 문방구와 피아노학원, 세탁소, 또 문방구. 그중에서 현대문방구가 내 단골집이었다. 아침 등굣길에는 바깥 매대에 학용품이 나와있었지만 하굣길이면 매대는 간식종류가 늘어서 있고 바깥에는 당당하게 연탄화로가 나와있었다. 오십 원이면 쪽짜를 할 수 있다. 부산에서는 달고나를 쪽자라고 불렀다. 일회용 설탕을 하나 사고 화롯가에 가면 옆에 놓인 커다란 플라스틱 통 한가득 국자들이 들어있었다. 시커먼 물안에 놓인 국자를 통 안에서 휘휘 저어 물기를 털어내고 꺼내 설탕을 붓고 연탄불 위에 올리면 말갛게 설탕이 녹아간다. 조바심내고 휘저으면 안 된다. 침착하게 기다리기가 왜 그렇게 힘들까? 설탕이 녹고 나면 연탄 화로에 묶여있는 소다 통에 나무젓가락으로 소다를 콕 찍어 국자 안을 휘휘 저으면 쪽짜가 완성된다. 젓가락으로 국자 안을 빙빙휘저어 젓가락에 덩어리가 지면 후후 불어 조심조심 먹으면 된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그 단맛을 사랑했다. 


엄마는 아침마다 백 원씩 용돈을 줬다. 백 원으로 쪽자 한 번 하고 나면 남은 오십 원으로 쥐포 튀김을 사 먹거나 깐돌이바 하나 사 먹고 집에 간다. 머리가 좀 커지고 나니 하굣길 쪽짜가 너무 감질났다. 그게 성에 찰리가 있나~ 우리 집 국자는 현대문방구 국자보다 크니까 집에서 해볼 궁리를 했다. 엄마는 카스테라 만들 때나 쓰던 소다 봉지를 고무줄로 쫑쫑 묶어 찬장 서랍에 넣어뒀었다. 그래 설탕도 있고 우리 집에도 연탄불이 있으니까. 


스뎅 국자에다 설탕을 넉넉히 붓고 연탄보일러 뚜껑을 열고 척 국자를 올렸다. 현대문방구 연탄불은 아줌마가 미리 피워놨다가 꺼낸 은은한 불이고 우리 집 연탄은 쟈글쟈글 끓고 있던 중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다 쓴 꿀통에 부어놓고 쓰던 설탕을 부엌 살강이며 바닥에 죄다 흘리고 연탄아궁이 근처는 눌어붙은 설탕이 끈적해졌다. 국자에 넉넉히 퍼 담은 설탕이 센 연탄불에 끓어 넘치고 연탄 불에 떨어진 설탕에서 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연히 소다도 젓가락으로 찍어 넣다가 엎었다. 쪽자 할머니(달고나 기구 일체를 가지고 다니며 동네 여기저기서 쪽짜와 도나스를 만들던 분이 계셨다)가 하시듯 설탕을 넉넉히 깔아놓은 도마에 쪽짜를 척하고 부어보지만 너무 과하게 센 불에서 타오른 쪽자는 할머니가 하시는 것처럼 예쁘게 도나스가 되지 않았다. 여하튼 신나게 해 먹었다. 당연히 국자는 새카맣게 그을렸다. 


그날 퇴근하고 온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았다. 엉망이 된 부엌 꼴에 얼마나 부아가 났을까. 부뚜막이며 살강이며 닦는다고 닦아본 들 눌어붙은 설탕이 어린애 힘에 깨끗이 닦여질 리 만무하고, 국자인들 닦였을까. 주황색 설거지 통에 새카맣게 그을리고 탄 국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겠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다시는 안 하겠다 다짐을 몇 번이나 했을까. 빈 집에 어린애 둘이 신나서 연탄불에 쪽짜를 해 먹겠다고 설쳤으니 나중에 생각하면 얼마나 무섭고 속이 쓰렸을까. 멀쩡하게 다치거나 데이지 않고 국자만 탔으니 다행인데 국자를 닦다가 엄마는 몇 번이나 집어던지고 싶었을까. '이노무 살림 탕탕 뿌아가 내삐리까' 소리가 절로 나오지. 


까만 얼룩이 며칠 가긴 했는데 엄마는 국자를 멀쩡하게 되돌려냈다. 

국자가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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