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주씨 Feb 15. 2024

쌍둥이

엄마는 쌍둥이다. 심지어 일란성쌍둥이다. 

내게는 엄마와 똑같이 생긴 이모가 있다. 


일곱 살 유월쯤인가?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그날따라 엄마가 집에 있었다. 엄마는 내가 기억할 때부터 일을 했다.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은 손에 꼽았다. 

너무너무 신이 나는데 근데 이러면 안 되잖아. 

엄마가 두 명 있었다. 


어린 마음에 너무 당혹스러워 방안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짓궂은 표정을 한 엄마들은 

"경주야 내가 엄마다"

"아니다 경주야 내가 엄마다" 

둘이는 작정을 하고 일곱 살짜리를 골려먹고 있었다. 세상에!!! 


아마도 그때 보다 더 어린 시절에 이모를 만난 날이 있었겠지만 이모가 내게 기억되는 최초의 순간은 그날이었다. 마당에 햇살이 얼마나 가득했는지 그래서 시멘트 바닥이 바짝 말라 심지어 반짝거릴 지경이었는데 엄마가 둘이야. 엄마들이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아이고 놀래라. 


이모는 일본에 돈 벌러 가서 오래 있었다고 했다. 엄마도 이모를 오랜만에 만나기는 매한가지였다. 똑같이 생긴 사람이 곁에서 자라 손잡고 놀다, 같이 어른이 되고, 하나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다. 이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날 이모가 세 들어 살던 아파트 방 한 칸에 동생이랑 같이 놀러 갔었다. 부엌살림에 찬장하나 두고 셋방살이를 했던 이모. 하룻밤 재미나게 놀고 자고 왔다. 


쌍둥이가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만난 횟수를 꼽자면 큰 이모가 더 가깝지만 그날 이후로 내 맘속에서 이모는 1번이 되었다. 엄마랑 똑같이 생긴 사람. 그래서 더 마음으로 막연히 의지하는 사람. 집에 남아있는 엄마 사진을 들여다보면 내가 기억하는 시점의 엄마는 분리해 낼 수 있다. 근데 엄마의 젊다 못해 어린 시절, 스물 갓 넘긴 처녀시절 사진은 솔직히 이게 엄마사진인지 이모사진인지 구분이 안된다. 공장에서 일을 했던 엄마를 생각하면 이건 엄마겠지, 이모가 버스안내양을 했다고 했으니 이건 이모 사진이겠지, 미루어 짐작해 요정도 구분만 된다. 근데 말짱하게 공단 블라우스에 나팔바지 입고 친구들과 45도로 서서 찍은 사진은 정말이지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물어보고 싶은데 이제는 두 사람 다 곁에 없다. 


엄마가 사고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일을 접고 달려와 준 것도 이모였다. 그때 큰 이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지 채 두 달이 안되던 때였다. 피붙이를 잃고 돌아서 다시 닥친 시련인데 심지어 그 대상이 쌍둥이다. 나는 아무래도 감당이 안될 것 같다. 이 생각이 든 것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그때의 나는 열다섯, 내 감정을 추스리기도 어려웠다. 


이모는 엄마가 하던 가게를 이어서 봐주었다. 아침저녁으로 병원에 가는 내 손에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찜질수건을 들려줬다.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들어가 의식 없는 엄마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주고 돌아왔다. 수건은 그때까지도 따뜻했다. 


엄마가 동생인지 언니인지도 까먹었다. 너무 오래된 세월이다. 다만 기억에 남은 건 향이 피어오르는 너머로 죽은 자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던 영정사진을 그대로 닮은 산 자의 허망함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게가 마무리되자 이모와도 헤어졌다. 이모는 아무래도 새로 재혼한 아빠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의 죽은 마누라와 똑 닮은 사람이 살아있다는 건 어쨌든 새 부인에게는 껄끄러운 포인트였겠지. 그리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 건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그건 다시 쓸 기회가 있겠지. 


대학생이 되고 숨어버린 이모를 찾아갔었다. 이모는 살기가 좀 빠듯했다. 묵묵히 앉아 담배를 피는 이모 앞에서 한참 울고만 왔다. 우체국 통장에서 찾아준 오만 원을 쥐고 학교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고 또 울었다. 암마가 살았다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모를 못 만났지 이십 년이 넘었다. 


내가 좀 더 자라서 

그래, 엄마 말대로 스무 살이 되어서 같이 맥주를 마실 때가 되었다면 

둘이는 똑같이 생긴 얼굴로 마주 앉아 일곱 살짜리를 앞에 두고 내가 엄마다 하던 얘기를 신나게 또 했겠지. 

그럼 어이없는 얼굴로 '아니 내가 얼마나 놀랬는 줄 아느냐'고 웃으면서 같이 맥주를 마셨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아름답고 아득하고 서글픈 이런 만약에라니. 

만약에 그랬다면 사는 일이 좀 더 여유가 있었을까. 

쌍둥이들은 같은 옷이라도 맞춰 입고 나들이라도 갔을까. 


미안했다. 

이전 01화 시작 : 마흔 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