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에필로그
처음 친구의 권유로 브런치를 시작하고 우리 얘기를 쓰기 시작했다. 밖에 보이지 않아도 써서 쟁이는 재미가 있었다. 브런치 작가 되기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뭔가 공들여 소개(?)를 써도 번번이 물을 먹었다. 어는 날 그냥 뭐라고 썼는지 메모도 안 하고 보낸 소개가 덜컥 합격(?) 소식을 알려왔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미 써놓은 몇 개의 이야기가 있긴 한데 이걸 내놔도 괜찮을까? 에이 몰라~ 그래 이왕 써놓은 거 올려보자 나중에 보면 재미날 거야 하는 마음으로 올린 우리 이야기에 하트를 눌러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계셨다. 그저 신기했다.
삽질의 기승전결을 완성하고 공식적으로 손을 잡았다 하고 쓰고서는 더 뭐를 써야 할까 싶었다. 도무지 이 얘기의 마지막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더라. 짜잔~~ 하고 해피엔딩의 마지막처럼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무던하게 같이 밥을 먹고, 산책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가끔 싸우고 하며 지나온 매일이 있었다. 드라마도 영화도 왜 해피엔딩의 마지막 이후 이야기를 쓰지 않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랄까? 소소한 일상은 나나 재밌지 이거 볼래요? 하고 남들에게 내놓을 만큼 재밌는 얘기는 없다. 아니 이 남자가 나랑 손잡아놓고 이러더라니까? 세상에~ 하며 기가차 광광 열을 올리는 모양은 다음이 궁금하니 뭔 소리를 하나 싶어서 들여다보지만 그다음의 이야기들은 시시할 정도로 세상 잔잔하다.
잔잔한 일상은 나를 살게 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어쩐지 남들 앞에 내놓기엔 조금 쑥스럽다. 사실 이미 얘기를 떠들 만큼 떠들어놓고 말이다. 니가 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날의 일몰과 그 시간의 바람과 그 계절의 풍경을 지나 그때의 일출 같은 무수한 매일을 모두 내놓기는 어쩐지 동어반복이다. 이제 마침표를 불러 올 차례.
브런치에 엄마 얘기를 먼저 내놓고 그자에게 우리 얘기를 브런치에 써도 괜찮겠냐고(이미 여러 개 써놨었다 ㅎ) 지극히 내 관점의 이야기인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었었다. 그자는 오케이! 했다. 그자도 엄마 글을 읽었으니 우리 얘기가 올라오는 브런치가 달리 또 있는게 아닌 걸 안다.
그래서 내가 쓴 우리 얘기를 읽으셨나요? ㅎㅎㅎ
아무리 남들한테 다 내놓은 공개형 일기장이라도 그자가 읽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좀 부끄럽고 뜬금없이 등이 가려운 기분이다. 아마도 난 소리 내서 절대 묻지 않겠지만, 그리고 어쩐지 당신도 읽었어도 읽었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손 닿지 않는 등 한가운데, 좀이 쑤셔 못 견디는 그런 간지러움이 몰려온다. 요즘 들어 오십견인지 어깨가 통 안 돌아간다. 요새 우리는 어딜 가든 공원 운동기구가 보이면 매의 눈을 하고 오십견 운동기구들을 찾아내고 몇 번이라도 돌리고 돌아선다. 사십 대의 연애는 내가 오십견을 돌리면 그자는 옆에 서서 어깨 펴기 운동기구를 당기는 것. 하나가 허리를 돌리면 다른 하나는 오금 펴기를 하는 그런 것. 도저히 나무 효자손은 내 손으로 사기가 뭣해 사다 놓은 스뎅 효자손을 꺼내 괜히 등을 좀 긁는다. 아 쑥스러워.
작년 11월, 그자의 친구 부부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그 친구 부부는 나에게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때 사귄다고 이미 확정하고 물어봐 어안이 벙벙하게 하던 바로 그 부부. 같이 만나면 두 분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만난다 소리를 가끔 우스개 소리로 아직도 한다. 신호 대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약속시간엔 이미 좀 늦었고 마지막 신호만 지나면 거의 도착한 지점이었다. 문득, 내가 말했다.
- 내년 11월 10일에 결혼할까?
- 어? 프러포즈야?
- 아니 생각해 보니까 내년에는 주말이겠더라고. 그러니까 해 본 소리야.
- 괜찮은데?
그자는 급하게 핸드폰 달력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11월 10일은 어제부터 사귄 걸로 할까요? 하고 합의한 우리의 시작점이다. 결혼을 하자 얘기는 서로 해왔지만 뭔가 날짜를 입에 올린 건 첨이었다. 작년 11월 10일은 금요일이었다. 난 그날이 우리 기념일인 것도 새카맣게 까먹고 있다가 그자가 무슨 얘기 끝에 언급해서야 아! 하고 생각이 났었다. 계속 기념일을 생각하다가 어쩐지 리듬을 붙여 흥얼거리며 주말이네~ 주말이야~ 하다 불쑥 나온 말이었다. 그날 자리에서 나의 일종의 프러포즈가 화제에 올랐고 좀 쑥스러웠다. 뭐 사실 올해도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지금처럼 비슷하게 일상을 나누겠지?
진짜 크게 바라는 건 없어.
내가 술 먹으며 꼬셔놓고 의리없이 술을 먼저 끊긴 했지만 자기도 너무 많이는 안 마시면 좋겠어.
이거 어때? 하고 물으면서 대량구매 큰손모드 발동만 좀 참아줘. 둘이 먹는데 돼지등뼈 십키로 라든가, 생삼겹살 이키로 이런 거 ㅋㅋㅋ 신선식품 백 그람 단위 가격이나 장바구니 쿠폰과 공산품 개당 객단가를 얘기할 때 되게 뿌듯하고 눈이 반짝이는 건 알지만 그래도 좀 참아줘.
때 되면 꽃구경 가고 여름 바닷바람도 구경하고 마트 정기세일 시즌도 챙기면서 그렇게 지내자.
참 귀한 당신,
고맙고,
사랑합니다.
나나 재미난 얘기를 읽어주신 여러 고마우신 분들께 미처 말로 다 하지 못할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