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나중에 한참 뒤에 그래서 내가 언제부터 좋았냐고 물어도 그자는 영 답을 안 해준다. 지금도.
가끔 술 한잔하고 작정을 하고 집요하게 물어도 두루뭉실 그냥 그냥 웃으며 넘어갔다.
아직도 그건 약이 오른다.
그렇게 무던하게 손을 잡고 우리는 무던하게 여태 잘 지낸다.
같이 해돋이도 보고, 코로나시즌 영업제한으로 새벽이면 고요했던 청사포 방파제를 걷고, 의자를 펼 수 있는 곳이면 캠핑의자를 펼치고 앉아 한없이 해바리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고 계절이 쌓이고 까치집이 된 머리로 나란히 앉아 테레비를 볼만큼 익숙해졌다. 싫어하는 것들을 알고, 컨디션이 나쁜 지표를 알아보고, 끝까지 말을 놓지 않고 피폐해질 때까지 싸워도 보고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삼 년이 지났다.
아무도 사십 대의 연애가 서로의 건강지표를 걱정해야 하는 거라고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서로의 혈당과 혈압과 근골격계 통증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활동반경과 음식을 고른다. 서로에게 허물을 다 내려놓고 바닥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
이른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니 세상은 온통 벚꽃이 흩날리고 연두는 지천으로 피어나고 바람은 걷기 좋고 아름다운 딱 봄날의 일요일이다. 어슬렁어슬렁 동네길을 걷는데 꽃잎이 흩날린다.
그냥 걷기만 해도 어쩐지 로맨틱한 날이다 그치?
드문드문 자목련이 남은 길을 걷다가 자~ 목~ 하고 그자의 뒷목덜미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음이 터졌다. 내 꿈은 개드립이나 치며 이렇게 소소하게 사는 거다. 개드립 칠 타이밍을 만났는데 놓칠 수가 있어야지.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자목련이 나타나면 아이고 저기도 자~ 목~ 하며 그자의 뒷목을 두드려댔다. 깔깔깔 웃다가 그자 어깨에 팔을 척 올리고 여차하면 헤드락을 바로 걸 수 있는 폼을 잡고 물었다.
그래도 나 사랑하지?
그자는 어쩐지 좀 새침하게 그래.라고 했다. 나는 또 웃었다. 그게 뭐야 그래가 뭐야.
비장한 얼굴로 그자가 말했다.
"나는 스타워즈가 싫어."
힘주어 강조해 세 번이나 말했다.
약간은 비장한 얼굴로 나름 이유를 들어 조곤조곤 얘기하는 이 사람. 왜냐 나는 스타워즈를 좋아하거든.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 사람은 너무 잘 알거든. 나는 웃겨서 데굴데굴 구를 지경이다. 근데 이 남자, 나랑 스타워즈를 보러 갔었다. 스타워즈 시리즈 마지막 편이 개봉한다고 들떠서 카톡으로 얘기를 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쉽게 하는 말로 약을 팔았다. 왜 내가 스타워즈를 좋아하고 어디가 좋고 언제 첨 봤고 영화잡지 사은품으로 받은 소장용 스타워즈 비디오테이프를 동생 놈이 팔아먹은 얘기까지 구구절절!! 왜냐 좋아하는 건 언제나 얘기가 하고 싶으니까.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날에. 심지어 나는 그자가 도무지 신경이 1도 안 쓰이던 시점이었다. 스타워즈가 개봉하는데 어떻게 다른 걸 신경 쓰겠냐고!! 레이가~ 어! 레이가 나온다고!!!
오늘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자발적으로 스타워즈를 보러 갈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스타워즈를 보러 갔었다고? 그게 언제였어? 난 기억이 안 나' 하는데 나만 혼자 데굴데굴 구르게 재밌다. 놀려먹을 타이밍이 생겼다!
"자기는 나랑 노는 게 재밌었구나? 싫어하는 스타워즈를 보러 갈 정도였어!!"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쩐지 우리만의 세계, 경배하라 느낌으로 세계관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싫었단다. 내가 거창한 스타워즈 세계관을 들먹이지 않고 스타워즈가 왜 좋은지 얘기를 하는데 나름 그자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싫어하는 포인트를 다 빗겨서 꽤 담백하게 얘기했었나 보다. 듣기 싫어서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단다. 그래서 스타워즈를 내가 봤다고? 또 약간 심통 난 얼굴을 하고 말을 더 하지 않는다.
아유 진짜 내가 맨 정신이라 적당히 놀려먹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언제부터 좋았어? 어?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