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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Jun 03. 2024

놀라운 킹스베리딸기

무계획적인 인간이 다이어리를 안산지 몇 년이나 됐는지 모른다. 출파사 난다에서 연말에 주는 다이어리는 책처럼 생겼다. 그게 예뼈서 매번 탐을 내고 책을 사고 다이어리를 받고 길면 보름 쯤 쓴다. 그리고 드문드문 쓰다 한해가 간다.


2021년의 나는 큰 결심을 했었나보다. 그래 뭔가 생각날 때 그자 얘기를 세줄만 써보자. 두둥.

내가 몇일이나 썼게? ㅎㅎㅎ


아빠가 사준 킹스베리 딸기를 안먹고 아껴서 들고와 얼른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날이었나보다.


딸기 앞에서 때때(조카1호) 보다 먼저 생각난 최초의 사람.


자기, 그거 알아? 우리 때때가 딸기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애기가 딸기 먹는 내내 어깨춤을 추면서 온 얼굴이 웃음이 가득하게 행복하게 먹었어. 그게 너무 예뻐서 물러진거 말고는 다 때때를 주고 맛있다는 딸기 소식만 들어도 난 때때 생각을 하던 고모야. 근데 때때보다 당신이 먼저 생각났던게 너무 놀라워서 짧게 썼더라고. 딸기 앞에서 때때를 생각 안하다니. 그럴 수 있다니.


사람을 다시 좋아한다는 사실도 너무 놀라운데 그 사람과 나란히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일이 벅차던 날들이었다. 그걸 써놓은 줄 새카맣게 잊고 있다 책상 정리를 하다 펼쳐보고 나는 고만 좀 부끄러워져 얼마쯤 얼굴이 붉어져서 '아이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조심스럽게 두근거리는 내 마음이 그렇게 남아 이렇게 쓰면 좀 너무한다 싶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날의 내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모든 순간들을 종종걸음치며 당신의 기색을 살피던 시간보다 지금이 훨씬 편안해졌고 허물없이 느슨해지기도 했지만 문득 이렇게 새삼 설레는 마음. 내 안에 이런 예쁜 것들이 생겨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라니.


늘 좋을 수는 없지만 당신이 없는 내일이 상상이 안되서 당신을 옆에 붙들어두고 오래오래 봐야지 한다. 그래서 사는 일에 별 미련이 없던 나는 너랑 오래오래 살아보려고 건강해지는 걸 택하기도 한다.   


기록은 흐지부지 되고, 재작년, 작년 다이어리도 그렇게 흐지부지 되버리고 말았지만 그 사소한 기록 중에 당신 비중이 제일 크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재밌으니까 그걸로 됐다, 기록해 뒀으니 나중에 환갑 쯤 꺼내 읽으면 사십대의 우리가 얼마나 예뻐보일까 생각도 해본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이 무던하게 이어지는 내 생활 속에 당신이 있다는 게 안심된다.


크게 기록하지 않아도 웃긴 얘기들은 우리 사이에 농담으로 박제되고 박제된 시간들은 가끔 앞구르기를 하다가 단어로만 남기도 한다. 좋았던 시간은 무던하게 두루뭉실 행복하다 하는 감각으로 잔잔하게 흔들리는 내 발목을 단단히 붙잡아주겠지 하는 믿음도 가진다. 내가 안먹던 호르몬제를 먹고 표나게 예민하게 굴어도 크게 의미부여하지않고 그런가보다 하며 지금을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참 고맙다고 얘기를 했었다. 말했던 순간의 감정보다 몇 배로 더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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