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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Jul 19. 2024

어쩌면 나는,

엄마는 다 알고 있었나 봐

매듭을 짓자.

마무리를 생각했는데 도대체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엄마를 기록하겠다 해놓고 나는 결국 내 얘기를 하고 있다. 그 방향의 목적성도 옳고 그름도  결국은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세계를 향해 굴러가는 촘촘한 연결고리이다. 모든 순간에 흩어진 파편적인 나는 결국 나로 회귀한다. 결국 내 몫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당신의 희망으로 살겠다 하는 말은 어쩐지 나에게 되려 희망이 되었다. 꺾일 것 같은 순간에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희미한 내 바닥을 다져주는 말.

내 존재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말.

그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말.


엄마, 너무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내가 기어이 나로 살아가기를 결심했어.


사는 일이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살기를 희망한다는 건 참 생경한 감각이다. 언제든 손 놓고 떠날 수도 있다는 가정을 걸어두고 사는 인생은 계획도 순서도 없다. 그날그날이 목표가 되고 하루가 지나는 순간이 무감각하다. 내일이 오겠거니 하는 느슨한 마음으로 거의 평생을 살았다. 거짓말처럼 살고 싶다 생각을 하던 즈음, 여러 이유로 아프기 시작했고 나는 평생 처음으로 산다는 일을 감각하며 살기 위한 선택을 했다. 그 시간과 경험이 다 처음인 듯 새로웠다.


누구든 내 일이 가장 우선순위에 들고 내 경험이 가장 도드라지며 유일하고 특별하다. 일상에 매 순간 온갖 의미를 가득 부여하고 유지하기는 숨차다. 무던히 살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여러 일들이 나를 후드려 패고 지나갈 때 그래서 마음이 순간 바닥까지 떨어질 때 기댈 의미는 있어야 한다. 난 그게 뭔지 몰랐다. 구원은 언제나 내부에서 시작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산다는 것,

살아가기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기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에 도착하는 생,

살아감,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감각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 지금, 여기 (moi, ici, maintenant)


어느 수업에서 이 말을 만났었는지, 어느 맥락이었는지는 다 잊었다. 바닥이 쪼개질 듯 가라앉을 때면 저 말을 품고 생각했다. 발 붙이고 서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간절했던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방향도 목표도 없지만 그래도 존재하고 싶었나?


어쩌면 나는 살고 싶었나? 그때의 나에게 안녕을 건넨다.


매일이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때때로 지리멸렬하다.

안다.

빛나는 순간들이 그래도 거기 있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만난다는 걸 믿어본다.

결국 그 순간들을 만나려고 나는 지금을 걸어간다.


다른 분들이 쓱쓱 카푸치노 하트를 그리는데 나만 계속 찌그러진 동그라미에 포춘쿠키같은 모양을 그렸다. 이제야 나도 하트 비슷한 걸 그릴 수 있다. 카푸치노 잔 가득 잘 만든 거품으로 하트가 생기는 순간에 얼마나 뿌듯한지 말이야. 실망하지 않고 계속 하면 하트는 그릴 수 있는 거였다. 매일을 그냥 이렇게 살려고. 그저 최소한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을 품는다.


그래 어깨 펴고 등 펴고 사람으로 살자.





뒤늦게 허둥지둥 순서 없고 맥락 없는 제 방식의 애도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끝내 가끔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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