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돌림노래를 불렀다.
기억을 되짚어 거슬러 올라가면 적어도 어느 하루는 환하게 빛나며 행복한 날이 있었다.
차근히 엄마를 생각한다는 건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이었나 하는 재확인의 시간이었다. 삶이 고단해도 나를 놓지 않았던 엄마 덕분에 나는 살아올 수 있었다. 벽을 마주한 듯 막막했던 스무 살을 지나서 마흔이 넘도록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곱고 아름다운 순간이 그래도 이만큼이나 남아서 다행이다. 막연한 시작이 이런 순간을 만나게 될 걸 알았을까?
모이지 못한 무수한 그리움들이 여기저기 글씨로 남았다가 사라졌다. 뭉뚱그려진 감정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너무 그리워서 차근히 회상하듯 쓰며 바라본 날도 있었다. 여기처럼 한 줄로 서서 모이지 못했으나 그 시간이 무용했던 것은 아니다. 아픈걸 아프다고 마주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것도 이제야 알겠다.
쓸 만큼 쓴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기록하는 이 상태를 멈추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이야기가 고갈되는 이 상태가 안타깝기도 하다.
내 안에 어떤 이야기가 남아있나 생각해 본다.
한 발 물러서 숨을 좀 고르고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감정이 쉽게 문장으로 나오질 않는다.
엄마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당신 인생을 이렇게라도 기록해두고 싶은 나를 이해하겠지?
때때로 사랑한다는 건 참 무용하고 허망한데 사람을 끌고 간다. 버티게 한다. 끝내 살게 한다.
이 만큼을 살아오고도 새삼 신기하다.
어릴 때 큰 이모집 막내 언니 옷을 많이 물려 입었다. 이모부가 외국에서 사 온 좋은 옷들이라 시간이 좀 지났지만 언니 옷은 튼튼하고 예뻤다. 새 옷을 입는 일이 드물긴 했다. 엄마는 학교 입학 할 때 그때 첨단 유행에 맞춰 빌로드 투피스를 한 벌 새로 사주셨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아무 날도 아니지만 세상 환하고 환하던 날에 엄마는 핑크색 치마와 하늘색 블라우스를 사 왔었다. 오로지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새 옷은 얼마나 행복했던지.
돈을 벌어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그저 오늘을 살았던 엄마의 날들. 어린것들이 자라나고 더 기운 내 돈을 벌어야 했지만 새 옷 앞에 날아갈 듯 웃는 나를 보고 그걸로 행복했을 거라 믿는다. 나는 엄마를 힘내서 살게 했던 날들의 증거이다. 보슬보슬 날아갈 것 같던 그 옷을 입고 동생이랑 손잡고 마당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린 마음은 으쓱한 기운이 차올라 어쩐지 부끄러워 배배 몸을 꼬면서 행복했다. 그렇게 빛나던 하루하루가 있다. 그런 소소한 기억들에 기대 오늘을 살아간다.
어른의 눈으로 이제는 나보다 어린 엄마의 날들을 되돌아보면 종종거리며 지난 김복희 씨의 매일이 안타깝고, 아직 젊은 당신의 한 때가 아리다.
아는 선생님이 몇 년 전 내 얘기를 듣고 경주 씨는 아직 결혼을 안 하고 아이가 없어서 그렇게 아직도 엄마가 애틋한지도 모른다고 하셨었다. 당신도 엄마와 일찍 헤어졌지만 결혼해 자식 낳고 살다 보니 그 감정과는 다른 것들이 있다고 하셨었다. 그게 사랑이 흘러가는 방향의 이야기구나, 사랑이 다음을 향해 이어지는 이야기구나 새삼 생각해 본다. 내가 아이가 없어도 이제는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
나는 이제야 엄마가 조금 더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당신이 살지못한 내일을
나는 나의 오늘로 살아야겠다.
담담하고 용감하게.
당신은 여기 없어도 나는 당신의 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