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중공(중국) 출발 전 HR과 CIA 뉴욕 지부 사무실이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회의를 하였다.
우리는 북경에서 공산당의 각종 부정부패와 부조리에 학생들이 들고일어난 상황에 따른 논의를 하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경험한 두 부류의 중공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꽤 많은 중공 학생들이 있었다. 특별한 두 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둘 모두 중학교 때부터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자유분방하며 옷도 잘 입고 다녔다. 나의 관점에서 중공 출신이라고 할 수 없는 부유한 대만 출신이 맞을 것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반면 다른 학생들은 소위 인민복이라 불리는 옷과 모자를 쓰고 요즘 메신저 백과 같은 모양의 국방색 가방을 메고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그 가방에는 검은색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한자가 명확히 쓰여 있었다.
사실 처음엔 공산국가 출신의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친구가 된다는 것에 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켜본 결과 똑같은 사람들이었고 그들 중 나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생겼다. 그들에게 자유분방한 친구들에 대해 본인과의 차이점을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대답은 아주 명쾌하였다.
그 친구들의 아버지들은 아마도 당 서열이 높은 사람들 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본인들은 인민들의 피와 땀으로 마련한 달러로 공부를 하러 온 국비 장학생이라고 하였다. 학부의 경우 삼 년 반이나 사 년 내에 졸업을 해야 한다는 당의 명령이 있어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 빨리 돌아가 국가 재건에 힘써야 하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하였고 다른 두 명에 대해서는 악의나 편견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단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본인들이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고 고국으로 돌아가 어떤 일을 하던 자유세계에서 배운 학문과 이론을 적용하여 본인들을 공부시켜 준 인민들을 위해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돌아가 실천하고자 한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변해가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감도 발생하였을 것이다.
내 경험을 들은 사람들이 갑자기 내게 질문들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적어도 청나라가 망한 후부터의 역사적 배경에 따른 귀결이었을 터인데 내가 그것을 정확히 알 수도 없었고 내 생각에 중공에 대한 데이터가 그만큼 없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에 당혹해하는 것 같았다.
미국은 무엇인가를 통하여 본인들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작전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나를 왜 중공 현지로 보낼 생각을 했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현지 파견 리스트에서 빠졌고 독일 출신 동료가 나를 대신하여 언론인을 가장 출장을 가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내가 미국 여권을 소지하였더라도 같은 동양인보다는 확연히 구분되는 서양인이 활동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이후 미국이 어떤 일들을 하였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언론에 나온 내용은 반체제 인사로 거론된 부부(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던 천체물리학자인 方勵之 부부)를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시켰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