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중국 천안문 사태 - I

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by 김성원

서류상 미국인이 된 나의 첫 번째 업무는 중화인민공화국 출장이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은 물론 공산주의 국가를 방문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중공을 간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주입식 교육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말도 안 통할 것 같고 더욱이 컴퓨터와는 무관한 국가이기에 출장 목적지에 대한 나의 의문은 컸지만 ‘왜?’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금기 사항이었다.


중공으로 출발 전 HR은 나를 데리고 우리 사무실이 있던 34번가 동쪽 끝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한 사무실로 갔다. 그 사무실은 CIA의 뉴욕 지부 사무실들 중 하나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회의실로 직행하였고 회의실 안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과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는 회의실 불이 꺼지고 슬라이드 영사기를 통해 수십 장의 사진이 순서대로 넘어가면서 누군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사진 속에는 북경대학교의 정문을 시작으로 미국인으로 보이는 서양 학생들의 사진과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고 논의하는 사진들이었다. 슬라이드 설명이 끝난 후 불이 켜진 후에야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고 그중에는 한 명의 중국인도 있었다.


당시 공산당 정책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시정을 요구하는 학생운동이 계획되어 있었고 이 정보를 입수했던 CIA는 급하게 국내에 있는 여러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으려고 하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당시 중공과 관련된 정보는 오래전 이민 온 화교들을 통한 정보만이 유일했었던 것 같다. 사진 속 외국인은 미국인 유학생이었지만 원래 신분은 아니었을 것 같고 이 학생 운동 발생에 대한 뿌리를 가능한 한 빨리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함께 배석했었던 중국인은 이민 온 지 오래된 중국인이라 회의 목적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하였다. 개혁과 개방에 따른 사회주의식 자본주의 도입은 좋았으나 여기에서 발생한 공산당의 각종 부정부패와 부조리에 학생들이 들고일어난 상황이었다.


북경대학에서 시작된 데모는 북경의 심장인 천안문으로 향하면서 과열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위기감을 감지한 공산당의 명령으로 군경들은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하였고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미국이 조금 더 신속한 판단과 결정을 하였더라면 세계사가 다시 쓰여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동유럽에서 했었던 것처럼 중공에 대한 미국의 사전 공작이 있었다면 말이다.


결과론적인 것이지만 중공에서 대대적인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동유럽 혁명에 따른 민주주의 체제 정착 그리고 소련의 붕괴가 거의 동시에 발생할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미국만 좋은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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