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본 내용은 실존 인물의 삶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실명 부분은 약어 처리하였습니다.
한국인으로 미 정보부에서 1988년부터 10년 동안 근무하신 분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1인칭 시점에서 작성하였습니다.
필리핀 3박 4일 출장 기간 동안 세계 화약고인 중동의 움직임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중동이 아닌 북한 영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일정 기간 동안 수없는 트럭들의 이동이 포착되었고 그 트럭들이 실어 나르는 흙의 양이 어마어마하였다. 시스템은 지하 수십 미터 아래에 구조물 건설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핵실험을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예상한 후 영변 또한 24시간 감시 체계로 변경되었다.
영변 지역에 비가 내린 후 전송되어온 위성사진으로 위장막을 설치한 트럭들은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시멘트 수송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북한 내 정보원에 대한 존재 유무는 알 수 없었으나 NSC가 보유한 첩보위성을 이용한 판단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중동지역을 24시간 감시 체계를 가동하던 중 이라크의 탱크와 장갑차 부대의 대규모 이동이 감지되었다. 이란 국경 쪽에 주둔하고 있었던 이라크 부대가 쿠웨이트 국경 쪽으로 이동하여 배치된 사실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새벽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어 진격하였다.
미국 입장에서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느낀 이유는 차분한 가운데 정황 파악이 진행된 것이 아니라 펜타곤 자체가 난리가 났다.
비상회의가 소집되었고 Game room과 War room 간 스피커를 통한 통신으로 원하는 자료들을 대형 화면에 띄워 주었다. 모니터링 룸 외에서 수집된 각종 정보와 이미지들도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어느 위성인지 15초 간격으로 탱크와 장갑차의 이동 그리고 헬리콥터 비행 영상도 전송되어 왔다. 우리는 그날부터 24시간 대기로 실시간 전송되는 모든 이미지들과 영상 정보를 정리하고 분석하였다. 이틀 만에 이라크군은 쿠웨이트를 점령하였고 미국은 쿠웨이트 내 자국민의 안전과 더불어 UN조약을 근거로 다국적군을 편성하기에 이르렀다.
계속되는 작전회의로 인해 우리들은 그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 정리, 분석하여 화면에 띄웠다. 이미 점령된 쿠웨이트 내에서의 파괴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곧바로 군사적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조금 의아했었지만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2,000여 명의 지상군과 공군을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로 보냈고 항모전단도 페르시아만으로 이동하였다. 시뮬레이션에 대한 지시는 없었지만 기존의 이라크 정보를 이용한 미니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8년간의 전쟁을 치른 국가답게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이라크였다. 미국에 있어서 거리상 군대를 동원하고 투입하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가까운 이집트와 터키에 주둔하고 있었던 부대만으로는 힘든 일이었고 본토와 독일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를 주력으로 삼아야만 하였다. 특히 이라크가 보유한 600여 대의 전투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해외 주둔 공군기지의 전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결정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 수송과 적재 장소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의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전쟁 물자를 적재하였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이라크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었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전으로의 확대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펜타곤에 화재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훈련받은 대로 북동쪽 비상구를 통해 주차장으로 나가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쪽 끝 잔디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소방차들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앰뷸런스와 경비 차량의 경광등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었다. 지붕 위 하늘에 검은 연기를 본 순간 정말 화재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화재원인은 합참 의장실 쪽 커피머신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아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인해 커피머신을 끄는 것도 잊을 만큼 모든 신경이 아라비아 반도에 쏠려있었던 것 같았다. 문제는 화재진압을 위해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킨 결과였다. 노후된 파이프가 수압을 이기지 못하여 터져 버린 것이다. 우리가 근무하고 있던 지하층은 흙탕물 폭탄을 맞아 처참한 모습이었다.
필요한 섹터마다 보수나 개축을 통해 요구되는 수준의 방지책은 만들어 놓았으나 지하층 복도의 대부분이 누렇고 시커먼 흙탕물 천지가 되었고 복구하는 기간도 일주일 정도는 걸렸던 것 같다.
모니터링 룸의 특성상 스프링클러를 통한 물이 아닌 특수한 가스를 사용하여 화재진압을 한다고 하여 기계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스며든 물과 청소를 위해 한동안은 외부와의 차단을 위해 장막을 치고 근무하였고 문 앞 경비병도 충원되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식사였다. 며칠 동안 두 곳의 식당과 함께 간이식당마저도 정상적인 운용이 안되어 외부에 있어 피해를 입지 않은 Ground Zero의 핫도그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었다.
급기야 펜타곤 관리 책임자인 David 시장님께서-펜타곤의 건물 관리 책임자는 민간인으로 펜타곤 시장님이라 불렀다- 주차장 한편에 특별 구역을 만들어 푸드 트럭을 상주시킨다는 시정 발표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외벽 보강과 유리창 교체를 위한 공사가 각 섹터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어 공사 관계자들을 위한 푸드 트럭 전용 주차 구역이 있었는데 보안상 그 옆쪽으로 내부 인력들을 위한 구역을 별도로 만들었다. 수십 개의 푸드 트럭으로 메뉴 선택의 결정 장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외부로 나와 햇빛과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쿠웨이트 친구를 만나 가족에 대한 안부를 물었으나 연락이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내가 모니터로 지금까지의 정황상 민간인에 대한 살상은 발생하지 않은 것 같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위로하였다.
병참 관련 업무를 보고 있던 그 친구는 곧 아라비아 반도로 파견을 갈 것 같다고 하였고 함께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하였다. 나나 그 친구나 아직까지 함께 일하는 군인들과의 친숙함이 모자랐던 터라 무엇이든 함께할 수만 있다면 혼자 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