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벚꽃 축제가 끝나갈 무렵이었으니 4월이나 5월로 추측된다. 각 모니터링 룸의 헤드와 한 명씩 총 여섯 명의 호출이 있었다. 장소는 펜타곤의 ‘War Room’(그때는 ‘Command Center’라고 불렀다.)이었다.
지하 한쪽에 위치한 나의 보안등급으로는 출입할 수 없었던 곳에 임시 허가증을 받고 Game room 헤드와 함께 들어갔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휘장이 중앙 양쪽으로 있었고 20명 정도는 충분히 한자리에 앉을 수 있을 크기의 회의 탁자와 고급스러운 가죽 의자가 있었다. 회의 탁자 정 중앙에 위치한 의자에는 백악관을 상징하는 휘장이 수놓아져 있는 것으로 보아 대통령이 앉는 자리인 것으로 짐작되었다.
우리는 가죽의자 뒤편에 있는 의자에 착석하였고 잠시 후 모든 군의 별(장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별 숫자를 더하면 수십 개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군들이 들어오자 나 같은 민간인 근로자를 제외한 군인들은 바로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였다. 세 번째 룸의 헤드도 군인이었는데 세 번째 룸에서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이 모든 장군들이 들어올 때까지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는 모습이 정말 우스웠다. 곧이어 양복을 입은 두 사람이 들어왔고 그들은 CIA 직원들이었다.
그 수많은 별들 중 합동참모부 장인 4성 장군 콜린 파월 대장이 CIA가 입수한 정보를 듣고 회의를 시작하자고 하였다. 당시 CIA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할 정황이 포착되었다고 하였다.
얼마 전 세 번째 룸에서 파악되었던 부대 이동은 일련의 군사 훈련으로 간주하였으나 CIA의 지상 요원으로부터의 정보는 이라크 군 내부에서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하였다.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이란과의 8년 전쟁이 끝난 지 채 2년도 안된 상황에서 또다시 전쟁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배경을 보자면 당시 이라크는 아랍 동맹국들로 약 일천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8년간의 전쟁으로 원유 수출이 국가의 주 수입원인 상황에서 대다수의 유정과 유전 시설이 파괴되어 원유 수출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때에 쿠웨이트가 채무를 상황 하라는 요구를 계속하여 온 것이다. 국토 면적이나 군사력에서 상대가 안 되는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한 후 국제사회와 일종의 거래를 할 계산이었던 것이다.
CIA의 상황 설명이 끝난 후 방안에 있던 사람들의 질문이 우리 세 번째 룸에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분석하고 수집한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였고 그 외 다른 부서에서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하였을 때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으로 병력의 이동이 있었고 이란 국경에 포진되어 있었던 부대의 이동이 현저하게 많아진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 회의에서는 일단 이라크의 전체 국경을 집중 감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감시 주기를 24시간으로 정하였다. 파월 대장은 이라크 관련 모든 정보를 우리 세 번째 룸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정기적인 보고라인도 만들라고 하였다.
그 후 우리들의 모니터에는 우리가 관여하는 첩보위성들과 함께 고고도 정찰기 및 다른 첩보위성에서 수집된 정보들을 볼 수 있었다. 더 정밀하고 이동한 궤적까지도 이미지로 보이는 고성능 기계와 시스템이었다.
당시 미국 행정부는 전쟁에 대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파월 대장의 지시로 독일, 아랍에메레이트,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과 전략물자 준비태세 명령을 내렸다. 전쟁을 위한 대규모의 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고 미국에서는 나름의 억지력을 보여주기 위해 페르시아만으로 항모전단을 이동시켜 주둔하게 하였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핵무기가 배치된 미 공군 기지가 있었고 아랍에미레이트와 바레인에는 해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그 규모는 보급창고 수준이었다. 독일에 주둔하고 있던 공군과 육군에게는 전출이 취소되었고 탄약창에 대한 실재고 조사가 실시되었다.
여느 때에도 모니터링 룸에 있으면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지만 War Room회의 이후에는 그 긴장감이 더하여졌다. 각 파트에 업무를 보조할 군인들이 배치되어 이전보다 더 많은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것은 충분한 휴식으로 더 자세히 정확하게 분석하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