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펜타곤 보다 여유있는 근무 편성과 시간 그리고 자유스러움이 내게는 더할나위없이 파견 근무에 대한 결정을 잘했다는 스스로의 평가를 내릴 수 있을만큼 최적의 근무환경 이었다. 풍부한 정보로 경우의 수가 많은 만큼 올바른 결정을 위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은 그 결정을 수행할 누군가에게는 고민 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객관적인 판단을 근거로 한 주관적 결정이라는 측면에서 펜타곤 보다는 우위의 정보력을 보유한 조직이었다.
프로 운동 선수라면 본인 관리만 잘하면 되는 off season과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쯤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여러가지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다.
영변에서는 계속해서 활동이 감지되는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고위회담을 가지고 있었고 소형이기는 하나 위성도 발사하는 등 여러 이슈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 ‘D4’에서 중점을 두었던 내용은 대한민국의 중국과의 정식 수교였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한반도는 이데올로기로 분단되지 않을 것이란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그런데 남북고위회담과 더불어 중국과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들의 소위 ‘독트린'은 어디까지 사수할 것이며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미국의 방어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핵우산' 을 어디까지 씌어 줄 것인지에 대한 결론인것인데 북한과 중국과의 협력 체계에 있어서 불편한 심기였음은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영변 상황을 알고 ‘그러지 마세요' 라는 취지 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CIA 아시아 담당은 한반도를 제외한 일본까지의 방어라인을 구상 하였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이라는 섬나라의 특성상 함락이 된다는 가정으로 미국의 서쪽 태평양 전체가 방어선이 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최전방 대한민국과 2차 저지선인 일본이라는 정책으로 조용해졌다.
슈퍼컴퓨터의 연산 내용과 CIA 파견 후 접한 모든 내용들이 정보화 되어 쌓여가고 있는것을 느낄때 마다 참으로 오싹한 기분이 여러번 들었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하고 있었던 모든 일들을 알고 있으니 상대를 알고 대면하는데 어찌 이길 수가 있을까.
공교롭게도 미국과 대한민국의 대선이 같은 해에 이루어졌다.
미국은 40대 기수인 빌 클린턴이 대한민국은 민주화 상징 중 한명인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 되었다.
정치란 흐르는 물과 같이 계속 흘러야 한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부터 누적 되어온 재정 적자에 부시 행정부 시절 증가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였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와 같은 논리나 ‘좋은 말은 세사람을 넘어가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잘한 일에는 인색하고 못한 일에는 넉넉한 결과론적인 내용으로 논하기에는 역사가 짧다. 한 인간의 인생도 죽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듯이 역사가 판달 할 일이다. 내 인생의 1992년은 큰 이슈 없이 지나갔다. 정신적으로는 긴장의 연속이었겠으나 그 긴장 들 속에 더 긴장해야 하는 일들이 없어 나름 평온한 한해를 보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