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미 CIA의 한국인

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by 김성원

큰 일들이 없이 똑같은 일상이 반복 되어 가던 1991년 여름 소련쪽 군대 이동에 대한 첩보와 함께 위성 사진들이 접수되었다. 탱크 부대의 이동이 모스크바로 향하여 외곽지역에 배치되는 상황이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여름 휴가동안 쿠테타가 일어나 것이다. 자유 경제 체제로의 전환은 하였지만 경제 상황이 한번에 좋아질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소련 쿠테타 사건 뒷면에는 미국 연출에 나토 회원국들이 주연이 된 일종의
소련 해체 시나리오란 것이 맞는것 같다.


서방국가들은 핵무기 해체를 조건으로 차관을 약속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소련의 천연자원을 눈독 들이던 자본주의 기업들과의 연대는 순탄하지 못하였다. 3일만에 끝나기는 하였지만 이런 상황에 불만을 가진 보수파 군인들이 주동이 된 사건 이었다. 이라크던 소련이던 미국이 배후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 했었더라면 결과론적으로 여러면에서 다른 세상이 되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국익이 먼저이었 겠지만 적어도 세계를 향한 테러나 일부 소수의 군부가 장악하여 진정한 자본주의로의 탄생을 못해 힘든 시간을 감래한 소련의 민중들을 위해서는 안타까운 역사의 순간들과 세월들이었다.


걸프 전 승리에 도취되어 한동안 펜타곤은 축제 분위기였다. 6월에는 수천명의 참전 용사들이 워싱턴에서 2차 세계대전 이 후 가장 거대한 환영 퍼레이드 행사를 가졌다. 메모리얼 다리를 건너 백악관 향하여 가는 중 부시 대통령은 길에서 슈바츠코프 사령관을 맞이하는 연출로 한편의 멋진 쇼를 만들어 전 국민들을 열광 시켰다. 1,200만불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행정부의 유능함 그리고 그 자부심을 주고 느끼기에 충분한 홍보 수단이 되었다.


걸프 전 이후 모니터링 룸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이 업그레이드 되었고 더 많은 저고도 첩보위성 발사로 이전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한 정보들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지하에 있었던 슈퍼컴퓨터도 새로운 IBM으로 교체되어 더욱 막강한 경찰국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북한 영변 감시는 24시간에서 30일 주기로 변경은 되었지만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가 포착되어 자동보고 되고 있었다.


별다른 문제없이 평화로운 세상이 이어져 가고 있던 어느날 HR이 가족과 함께 워싱턴에 왔다. HR과 아내 J 그리고 아들인 M과 함께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포토맥 강변을 걸으며 가을을 만끽 하였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 M 보느라 J가 자리를 비운 사이 HR은 조심스럽게 현재 업무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어 보았다. 나는 속으로 ‘무언가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인가 복안을 가지고 있을 경우 시작하는 HR의 습관이었다. 나는 HR에게 ‘Now where?’이라고 물으니 HR은 껄껄 웃으며 나를 툭 쳤다. 아마도 자기 속을 알고 있던 내가 우습고 들킨 자신이 쑥스러 웠던 모양이다. 그리 속마음을 들켜서 생존할 수 있겠냐고 묻는 말에 너는 괜찮다라고 답하는 HR에게 고맙다라고 답하면서 이제 말해 달라고 하였다.


1992년 3월 국방부와 CIA의 협력 부서가 생긴다고 하면서 업무는 힘들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보 계통에서 나의 경력을 업그레이드 해보는것도 괜찮을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같다는말로 즉답을 피했다.


교수님의 도움으로 애기치도 않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연방 공무원이 되어 국방부에서도 나름 중요한 업무를 감당하고 있는데 이젠 중앙정보부에서의 근무라는 것이 나에게 합당할 것인가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해보았다. 그리고 과연 이 직업을 계속 할 것인가와 관둔다면 어떤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서른살이 넘은 4년차 연방 공무원을 그만 두었을 경우 일상적인 회사가 요구하는 지식이나 경험이 없다는것이 나의 단점 이었고 장사를 할 수 밖에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할 줄 아는게 없다라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한국 대사관에 계시는 교수님께 의논을 드릴 수 밖에 없었다. 답을 주시기 전에는 쿠웨이트 친구에게 물어 보았다. 친구는 내가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기에 CIA로 가거나 경력이 인정되니 아예 군인이 되는것도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군인이 된다는것이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미국 사회에서 군인과 그 가족에 대한 혜택과 퇴역 후 정부 조달 사업에도 특혜를 받을 수 있어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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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미국 CIA 국장 및 CIA 로고

며칠 후 교수님께 장문의 메일이 왔다. 한마디로 CIA행 이었다. 펜타곤 보다 외국인이란 차별이 더 심할 수도 있겠지만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라고 하시면서 그곳에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언젠가 일을 그만 하더라도 일반 회사던 다른 부서의 공무원이던 더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다고 CIA로 걸 것을 주장하셨다.

정말 많은 고민끝에 CIA로 가기로 결정하고 나는 HR에게 전화를 걸었다.


HR도 잘 생각했다고 하였다. 며칠 후 2층 사무실로 가 대령에게 CIA 파견 근무 지시서와 그에 따른 일련의 서류 작업을 마치고 Game room으로 내려가 나의 후임자가 될 중위에게 업무 인수인계 해주고 함께 근무한 군인들과도 악수로 이별을 고했다. 쿠웨이트 친구는 서운한 마음으로 나를 오래동안 안으며 행운을 빌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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