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경도상 서울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의 1월 날씨는 매서운 바람과 함께 차가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는 나만의 느낌일 수는 있었겠지만 1994년은 나에게 한국으로 13년 만의 ‘귀국’이라는 점에서 그 방문 목적과는 상관없이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설레었다. 한국을 떠날 때의 기억과 당시의 문화만을 간직한 채 살아온 나에게 내가 가서 해야 할 임무들과 비록 개인적인 용무로는 기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걸프전과 유사한 일말의 사건도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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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 공군기지에서 이륙을 기다리는 동안 미 육군 소속 특수부대인 레인저스 부대원들과 특수 개조한 다섯 대의 허머를 실은 수송기는 워싱턴 D.C를 출발하여 태평양 상공에서 공중 급유를 받은 후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잠시 착륙하였다.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해병대원들을 태운 수송기는 대한민국 서남쪽에 위치한 군산 공군기지에 착륙하였다. 당시 대한민국 군. 민 통합 공항에 유일하게 설치된 보일러 시설로 365일 사용이 가능한 활주로였었다. 군산 비행장에 내린 후 나와 레인저스 소속 여섯 명의 부대원들은 두대의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경기도에 위치한 평택 미군 기지에 도착하였다. 평택 기지에는 동북아를 겨냥한 감청 부대가 있었고 인근 오산 공군기지에는 한반도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방공망을 책임지는 시설이 있었다. 혹시라도 미국의 작전 계획을 감지한 북한이나 중국, 소련의 특이 동향을 24시간 감청하고 감시하는 상황이었다.
오산과 평택 미군기지에서 보고를 받은 후 나와 레인저스 부대원들은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용산 미 8군 기지에 도착하였다. 오산에서 이륙한 헬기가 서울 용산까지 가는 동안 내 눈에 들어온 대한민국의 지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 많은 건물들과 개발된 지역들을 보면서 내가 떠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바뀐 나의 조국이 새삼스러웠다. 용산에 위치한 미 8군 헬기 착륙장에 착륙 준비를 위해 선회하는 동안 하늘에서 바라본 이태원의 모습도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이태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쩌면 잿더미로 바뀔지 모를 이 장소를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미 8군’은 미국 본토 내 군 편제에 소속될 수 없었다.
이유는 ‘한국전쟁’, ‘Forgotten War’, ‘6.25 전쟁’, ‘동족상쟁의 비극’이라 불리고 있었던 전쟁에서 군대의 상징인 군기를 북한군에게 뺏기고 말았다. 그 군기를 찾아오지 않는 이상 미 본토로의 편입은 허락될 수 없다. 즉, ‘미 8군’은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미국 군대였었다.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었던 Gary 사성장군은 본국으로부터 받은 소개명령을 준비하고 있었다. 용산기지에 내려 사령관이 배려한 지프차를 타고 사령관 숙소로 향하였다. 사령관 사무실에는 여러 눈들과 귀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본인이 가족들과 생활하는 관사로 안내하였던 것이다. 사령관은 그때까지 주변 국가들의 특이 사항은 없었으나 백악관의 의중을 파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하였지만 내가 답할 수 있는 내용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Gary 사령관은 한국에서의 생활로 나를 대함에 있어 그 어떤 차별과 관련된 느낌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