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미, 북한 핵공격 작전 투입 III

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by 김성원

용산 미군기지, 아니 미 8군 사령부, 아니 대한민국의 땅이지만 80년 넘게 남의 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그 땅. 내 나이 때 미군이나 미군 속들은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일종의 아르바이트를 많이들 하고 있었었다. 비록 미국의 일상 생들들을 경험하기엔 군부대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대한민국 안에서 나름의 미국이라는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였었던 철조망 바로 담 너머에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가보고 싶은 장소들 그리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그리웠었던 내 나라 대한민국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작 그 땅을 밟을 수가 없었다. 장난 삼아 부대 철조망을 넘어서려 할 것 같은 행동을 보임과 동시에 덩치 큰 레인저스가 내 앞을 가로막았었다. 말이 좋아 엄호나 경호이지 내 개인적으로는 감시 그 자체였다.


본부에서도 명확한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것은 최종 결정관자인 클린턴 대통령의 의지나 참모들의 조언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3면이 바다인 관계로 해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밀리에 전투 배치를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느 작전이던 시간이 지나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비밀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함대의 움직임이나 폭격기의 전진 배치 그리고 미 8군이나 한국 주재 대사관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할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Gary 사령관과 미 대사관의 관련자 그리고 나를 제외한 미국 측 사람들만이 초조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 온 지 정확하게 45일 만에 Company로부터 복귀 지시가 전달되었다.

나름의 해석은 핵 공격에 대한 철회이던 다른 방법이던 소개 명령에 대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했었는지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6명의 레인저스 대원들은 헬기를 이용하여 용산기지에서 오산 기지 도착 때까지 나와 함께 동행하였고 나는 오산 기지에서 군산을 거쳐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 도착하였다.

나는 가데나 기지 도착 후 최종 보고를 끝으로 한반도의 영변사태는 내 입장에서 종료되었다.

괌 기지를 거쳐 볼링 기지에 도착 후 곧바로 Company로 복귀하였다. 볼링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의 on을 누르자 수십 개의 음성과 문자 메시지가 저장되어 있었다. H와 여자 친구 A의 메시지가 주였을 만큼 나의 대한민국 출장 내용은 극비 사항이었다.


참조 한겨레신문 2018-09-19


영변사태는 그 해 6월 평화주의의 상징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표면적으로는 마무리되었었지만 한동안 영변은 24시간 감시 체계로 지속되었다.

결과론적인 내용일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핵 공격은 아니더라도 북한이 포기할만한 소규모의 작전이라도 진행했었더라면 2020년 현재 북한의 핵과 관련된 고민은 없을 것 같은 내 생각이 어떤 것인지는 내가 판단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현재의 북핵 사태는 미국이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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