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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원 Feb 25. 2024

[프롤로그] 퇴사 같은 휴직을

사라진 도시에 추억을 담다

2008년 봄부터 회사가 정말 다니기 싫어졌다.


정말 최선을 다하고 노력을 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던 시절, 조직의 규칙과 관계에 얽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 하기 싫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들로 몰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 몰린 것은 신 사업 추진에 따른 실패와 미비한 성과로 회사 내에서 나의 포지션이 점점 줄어든 까닭도 있었다.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줄줄이 실패한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과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관의 차이로 내 행동과 말을 조직에 맞추는 부자연스러움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지난 일이지만 내가 했던 대부분의 일들은 방향은 맞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실패 같은 시행착오였다. 안타까운 것은 조직에서는 시행착오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임원, 실패만 반복하는 임원, 조직과 괴리가 커져가는 임원! 어쩌면 나는 이 조직과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면서 출근하는 것이 끔찍했던 시절이었다.


퇴사를 몇 번을 고민했다. 내가 벌여 놓은 일을 내가 수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퇴사는 도피 같았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도피가 유일한 길로 내 마음이 점점 조여왔다. 퇴사...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은 것이지만, 나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봄부터 시작된 고민의 시간은 여름을 지나면서 몸에 이상이 나타나면서, 업무 지장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진지하게 퇴사를 상의하였다. 이 상태로는 나도 못 버티고, 회사 업무에도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내 건강이 우선이기에 좀 쉬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을 권했다.


2009년 가을이 시작될 무렵 대표이사께 보고를 했다. 퇴직이라는 말의 의미로 쉬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을 얘기하고 더 이상 업무를 할 수 없음을 설명하였다. 대표이사께서는 나에게 쉬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신사업과 실적에 대한 부담을 좀 털어버리라고 얘기했다.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그 당시 그의 말은 나를 위로하는 말로만 들렸다. 나는 대표이사 면담을 마친 후 퇴근을 했다.

당시 근무했던 건물

다음 날 아침 인사팀장이 내 자리로 왔다. "몇 개월 휴직 하실 건가요? 이사님"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당황을 했다. 나는 퇴사를 얘기했는 데, 대표이사께서는 나를 휴직처리한 것이었다. 순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팀장에게 낼 다시 얘기하자고 하면서, 일단 업무는 이번달 (9월)까지는 팀장들에게 업무 이관 및 중요 사항은 별도 정리하겠다고 말을 하였다.


나는 퇴직을 말했는 데, 휴직이 되어 버렸고, 3개월의 휴직 시간을 갖게 되었다.

휴직 후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없을지? 조직에서 나의 필요성을 느낄지 못 느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직장 생활 3개월 병가도 아닌 일반 휴직을 감행하는 것 자체가 당시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서는 용납이 어려운 때였다. 나 역시 당시에는 말은 휴직이지만, 퇴사라는 마음을 갖고 모든 짐을 다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회사에서 나를 퇴사 통보를 할 경우, 다시 내 자리 정리할 것이 없도록 자리를 정리하고 비우고 나왔다.


퇴사 같은 휴직으로  그렇게 난 무책임한 가장과 이사가 되기로 했었다.


집에서 쉬는 동안 건강도 챙기며, 내가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정리를 조금씩 해 갔다. 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책도 읽고, 블로그도 하고, 여행도 하고, 가족과 함께 여행도 하고 일상을 즐기는 데 집중하였다. 쉬는 동안 나는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행복은 여러 형태가 있다. 그중 “일상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퇴사 같은 휴직 기간 동안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 2주간의 배낭여행이었다.

학창 시절 3만 원으로 부산에서 강릉 그리고 서울을 거쳐 부산으로의 여행! 그 힘들고 짜릿함이 떠 올랐다. 그래서 쉬는 동안 꼭 해보고 싶었다. 같은 경로의 다른 느낌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삶에서 한 권의 일기장을 만든 시간이 되었다.


이번 브런치의 제목으로 "사라진 도시에 추억을 담다"는 2009년 중년 직장인의 방황을 극복하기 위해 떠났던 “배낭여행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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