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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원 Apr 14. 2024

눈썰매 놀이

1980년대 부산으로 떠나다.

1990년대 초 겨울

부산 촌놈이 서울에 상경했을 때

서울의 매서운 겨울밤

밤공기는 삭막하게 느껴졌다.


바람 한점 없는 광화문 거리를 걷는 데

차가운 공기가 나의 살점을 베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서울역에 내려 광화문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광화문 교보문고 앞 도로를 걷는 동안

나는 부산에서 입은 겨울 복장이었다.


젊다는 호기를 부리기에는

따뜻한 남쪽 지방 청년에게

바람 없이 추운 서울의 겨울 날씨는 서러웠다.


부산 겨울 날씨는

바람이 불면 좀 춥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생활할만하다.


바람 없이 매서운 서울 광화문 거리를 걷던 20대는

이제 40을 훌쩍 넘어 (2008년 기준)  

따뜻한 남쪽 지방 부산으로 나를 찾아 떠나왔다.


내가 태어나서 부산을 떠나기 전까지

내 기억에

눈 다운 눈이 내렸던 날과

도로에 얼음이 꽁꽁 언날은 2~3일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내 기억에 의존한 것이기에,

실제 기상청 기록과는 무관하다.


1980년대 초즈음

동네에 눈이 흩날리는 날이면

온 동네 꼬마 녀석들이 집 밖으로 우르르 나와서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아이들은 바랬다.

눈이 계속 내려 쌓이길...


부산에 눈이 펑펑 온 어느 날

난 아버지와 마당에 눈사람을 만든 적이 있다.

그리고

눈이 그친 다음 날

동네 아이들은 비닐 포대와 비닐 장판을 갖고 나와

눈썰매 놀이를 했다.

눈썰매 놀이 하던 집 앞


눈이 온 다음 날 어른들은

동네 골목에 쌓인 눈을 도로 가장자리로 치우셨다.

따뜻한 부산 날씨로 며칠 안에

눈이 모두 녹아버릴 것을 어른들은 알고 계셨다.


동네 아이들은 겨울 방학에 맞춰 내린 눈 덕분에

어른들이 치워놓은 도로 가장자리 눈을

집에 있는 삽을 갖고 와 다진 후

눈썰매를 타기 위한 눈 길을 만들었다.




사진 속의 저 집은 적당한 경사가 있는 동네 골목으로

저 집 앞에서 동네아이들은 눈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집에 있는

비닐 장판, 비닐 포대  등을 갖고 나와

사진 속 집 문 앞에서 눈썰매를 탔다.


동네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오늘 마음껏 눈썰매를 타지 못하면

부산에 언제 또 눈이 올지 모른다는 것을


나와 동네아이들은  

사진 속 집 앞 경사도로에 만든 눈길에서

눈썰매를 수십 번을 탔다.

우리는 지겹지 않았다.

아니 마냥 즐거웠고 너무 좋았다.


서울 눈썰매장과 비교하면,

TV에서 보았던 시골의 언덕에서 비료 포대로

눈썰매를 타는 것과 비교하면

부산 우리 동네 아이들의 눈썰매는 초라하지만

그때 우리는

우리도 눈썰매를 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2008년 

도시 계획으로 사람들이 사라진

이 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그때 눈썰매를 타던 아이들 모습이 그려진다.


놀 수만 있다면 어떠한 악조건이든, 환경이든

우리는 놀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하루를 정말 후회 없이 놀았다.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난 정말 후회 없이 살고 있는 것일까?


물끄러미

비닐 장판을 들고 뛰어가는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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