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부산으로 떠나다.
제민한의원이 있는 골목은 경사진 도로로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는 부적합했다.
그리고
이곳은 윗동네와 아래 동네의 DMZ로
이 골목에서 가끔 우리 동네 아이들과
아랫동네 아이들이 연탄재 싸움을 하곤 했다.
연탄재 싸움놀이를 하는 날이면
우리 동네와 아랫동네의 DMZ를 사이 두고
아이들은 진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집에 있는 하얀 연탄을 한두 개씩 갖고 와
던지게 좋게 부셔서 쌓았다.
연탄재를 맞으면 꽤 아프기에,
아이들은 집에 있는
장독대, 양철 물통, 쓰레기통 등의 덮개를
엄마 몰래 갖고 나와 방패로 삼았다.
긴장감이 감도는
우리 동네와 아랫동네 사이의 연탄재 싸움...
동네 대장격인 형이 공격을 외치면
우리 동네와 아랫동네 아이들은
공격조와 방패조의 역할 분담이 되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제민한의원 골목은 전쟁터가 되었다.
아이들의 연탄재 싸움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로 서로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직접 사람을 겨누는 행위는 자제하였다.
누군가 다치면 일이 커질 것을 알기에...
연탄재 싸움이 시작되면
제민한의원 골목은 온통 연탄재로 뒤덮인다.
골목집 담벼락과 문에는 연탄재의 흔적이 붙어있고
골목은 온통 부서진 연탄재가 흐트러져 있다.
연탄재 싸움이 멈추는 시점은
동네 어르신들이 뛰어나오며
고함을 치는 순간이다.
어떤 어른은 빗자루를 들고
어떤 어른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와 뿌리고....
우리 동네와 아랫동네 아이들은
강력한 공동의 적군 출현에
각자의 동네로 열심히 도망갔다.
그렇게 동네 연탄재 싸움이 끝나면
아수라장이 된 골목은 어른들의 몫이고
그날 밤 이 집 저 집에서
아이들을 혼내는 소리가
담장 밖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날은
나 역시 어머니께 혼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혼이 나고도,
우리들은 가끔씩 또 연탄재 싸움을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에 하곤 했다.
우리 동네와 아랫동네 아이들은
같은 국민학교에 다녔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 따라 서로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동네 놀이에서는
편을 가르고 열심히, 재미있게 놀았다.
아이들은 편을 나누고 놀 때와
함께 생활할 때를 구분했다.
상황에 따른 관계 설정을 할 줄 알았다.
연탄재 싸움에서
동네 형이 정해주는 역할을 맡아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중년의 방황에 답을 찾고자 떠나온 여행
어릴 적 연탄재 싸움 놀이를 회상하면서
지금 나는…
상황에 따른 관계 설정을 잘하고 있는 걸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최선을 다했을까?
그리고
난 나의 일을 즐기고 있었던 걸까?
의문이 깊어졌다.
머릿속은 복잡한데,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