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HR과 아침 식사를 프랑스 니스에서 하고 있던 중 허리춤에서 진동을 느꼈다. “1000 London” HR에게 보고 후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겨 런던 행 티켓을 구입하였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긴장감과 여행 같은 해외 출장이 교차하며, 영국으로 향하는 기대와 공항에서 만날 Handler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나는 런던 ‘City’ 공항에 도착하였다.
“OO News Stand”라는 메시지를 받고 안내 데스크를 거쳐 위치 확인 후 이동하였다. 메시지에 호출된 가판대 앞으로 다가서자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Handler들은 Carrier를 만나기 전 신상 정보에 얼굴 사진도 포함되었나 보다. 그런데 한 사람이 더 있었고 그는 Cray사에서 파견된 기술자였다. 세 사람은 공항을 나와 런던에 있는 한 연구소로 향하였다.
당시 유럽 국가들 중 영국은 가장 많은 수의 슈퍼컴퓨터 및 동급의 기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Handler와 반갑게 인사한 영국의 노신사는 나와 Cray사 직원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영국 특유의 억양이 어색하긴 하였지만 특유의 제스처와 함께 영국의 요즘 날씨부터 시작하여 서두가 상당히 긴 인사가 끝났다. 노신사는 Cray1이 있는 장소로 우리들을 안내하였고 작동이 멈춘 상태를 확인한 Cray사 직원은 후면 쪽 부품을 교체한 후 작동 여부를 확인하러 영국인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 사이 노신사는 Handler와 내게 IBM에서 유럽 소재 대학교에 사천만 달러 규모의 슈퍼컴퓨터를 지원하는 계획이 있는데 아느냐고 물었다. Handler는 능숙하게 처음 듣는 정보고 다른 회사의 영업 방침이니 참고하겠다고 답하였다. 이 내용은 뉴욕으로 돌아가 보고서에도 첨부하였지만 몇 주 후 워싱턴 D.C에 호출되어 증언까지 하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IBM이 비록 유럽 내 일부 대학교를 지원하여 본인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한 것이라는 변명으로 정부를 설득하였으나 적어도 내가 이 업무에 참여하고 있는 기간 동안 IBM 슈퍼컴퓨터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당시 미 국방성은 유럽 내 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던 슈퍼컴퓨터의 모든 자료는 물론 EC(EU의 전신)의 모든 고성능 컴퓨터 관련 프로젝트 내용도 파악하고 있을 만큼 철저한 관리로 슈퍼컴퓨터의 독보적 독점적 위치를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1987년 고성능 컴퓨터의 미국 총매출이 약 11억 달러였는데 그해 유럽연합의 고성능 컴퓨터 5개년 계획 총예산이 약 40억 달러였으니 미국 입장에서 반드시 이 숫자를 본인들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전 세계 고성능 컴퓨터의 수요나 계획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우리가 활동하던 시기의 정부 기관들에 관한 정보는 우리가 수집한 결과였을 것이고 민간 관련 정보는 아마도 CIA가 포섭하거나 직접 활동하는 각지의 정보원들로부터 수집된 내용들이었을 것이다. 그 정보 내용을 근거로 외교나 통상을 통해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압박하고 협상하는 것이 미국식이었다. 민주주의 진영에서 미국의 안보 우산 안에 들어와 있어야만 하는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다른 선택권을 가진 나라는 별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