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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원 May 29. 2021

13. 제2차 국제슈퍼컴 학회 모니터링

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미국은 정보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수집, 분석, 예측 활용하고 있었다. 슈퍼컴퓨터는 방산 산업과 핵무기 개발과 연관이 있어, 관리 통제를 위해 정보기관의 활동을 한 것이다. 과거 기술의 발전이 방산 산업이 이끌었다면, 지금은 방산 산업 기술을 기본으로 IT를 근간으로 한 정보 기술 수집, 분석, 예측이 저변에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축적한 정보 수집, 분석 능력을 갖고, 전 세계의 정보를 수집, 분석하면서 세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본다. 운영의 기본 배경에는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어쩌면 당연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트럼프가 자국 우선 및 우월주의를 내세우면서 세계를 운영하려 하였을 때, 미국은 그저 강한 깡패 같은 국가였다. 어쩌면 그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일 수 있다. 미국 대통령과 지도자들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세계를 운영하려 하기에, 동맹국들에게 명분을 제공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활동에 끌어 들일 수 있는 요인이었다.

미국 국내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계 경영을 위한 줄타기가 과거보다 더 힘들어진 상황에서 미국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미국의 변화이고, 세계 정세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St. Malo 1800”

저녁 6시까지 St. Malo. 여기는 또 어디란 말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나는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가 안내 센터로 향했다. 프랑스도 처음 이거니와 St. Malo가 프랑스에 있는 곳인지 어디 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인지 상황 파악 훈련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St. Malo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안내 센터에 비치되었던 프랑스 지도를 펼쳐 놓고 이 또한 미리 준비했었어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지도상 St. Malo는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영국 해협을 대면하고 있는 항구 도시로 내가 받은 교육이나 훈련 상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오래된 도시였다. 


꽤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한 St. Malo의 첫인상은 중세 영화에 나오는 세트 장 같았다. 페이저로 도착했음을 송신하고 수분 뒤 호텔 주소가 적힌 메시지가 수신되었다. 택시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호텔은 해변을 마주한 아주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듯 보였다. 호텔로 들어서자 뜻밖에 HR이 나를 맞아 주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다른 Handler를 만나 또 다른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맞는 것인데 HR을 다시 만났다는 것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시간은 어느 장소를 방문하여 정해진 업무를 볼 시간은 아니었다. HR은 나에게 체크인 후 저녁을 먹자고 하였고 나는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HR을 따라나섰다. 

호텔 밖으로 나와 걷는 거리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오래된 석조 건물들과 사진이나 영화에서나 봄직한 풍경들로 신기하기까지 하였다. 인근 식당으로 들어간 우리는 HR이 주문한 이 지방 전통 음식과 함께 와인을 마셨다. 하늘과 땅끝만큼의 차이가 나는 여유로움에 부러움과 함께 닮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교육 기간 동안 처음으로 방문했었던 일본과 호주를 거쳐 이제 프랑스의 어느 시골 항구에 있다는 것이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멍한 상태였다. 


St Malo

그런 나를 앞에 두고 HR은 왜 이곳으로 왔는지 설명해 주었다.

HR이 프랑스에 온 이유는 네 가지였지만 자세한 설명은 세 가지만 해 주었다. 

첫 번째 이유는 당시 프랑스가 독자적인 슈퍼컴퓨터 개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확인 및 관련 내용 조율

두 번째 St. Malo에서 열리는 ‘제2차 국제 슈퍼컴퓨터 학회’ 진행 체크

세 번째 Handler


네 번째 사실 나와는 상관없는 어찌 보면 국가적인 지저분한 거래였던 것 같다. 당시 독일의 지멘스는 일본의 후지쯔와 연계하여 슈퍼컴퓨터를 개발해 놓은 상황이었고 이어 프랑스도 자체적인 개발에 착수하였다고 했다. 다만, 일본을 압박하여 더 이상의 개발은 저지시켜 놓았다고 하였다. 독일은 소련 연방과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기에 유럽에서 미국의 슈퍼컴퓨터 독주는 계속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제작을 착수한다는 정보가 있어 확인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정보는 사실이었고 프랑스는 ACRI라는 회사에서 1995년 자체 개발에 성공하였다. 

두 번째 St. Malo에서 열리는 2차 국제 슈퍼컴퓨터 학회’ 진행 체크의 내용은 자세한 설명이 없어 몰랐으나 주최도 미국이었고 특히, IEEE라는 단체가 후원하는 것이었다.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는 전기공학 및 통신기술에 관련된 표준화에 앞장서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이나 미국 정부를 대신한다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대외적인 업무들이 모두 미국의 국익을 위한 전 방위적인 활동이었다. 세계 최강국으로서 물적 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그 위치를 선점하고 고수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던 것이다. 


저녁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HR은 Carriers로서의 나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동안 교육과 훈련 과정에 대한 평가를 동시에 말해 주었다. Carrier로서의 점수는 “B”. 이유는 긴장감에 대한 유연성 부족이었다. 우주연구소에서 연구소 직원들 간 대화가 없었다는 점과 공항에서 저장 장치를 전달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긴장감에서 나왔던 행동들이라 하였다. 연구소에서는 본인이 직접 보았다고 하더라도 공항에서는 누군가 나를 계속하여 주시하고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우리 15명은 그 달 모두 한번 내지 두 번씩은 출장을 다녀왔다. 그 말은 우리의 모든 행동들과 얼굴 표정까지도 체크되면서 평가되고 있던 것이다. 무서웠다. 교육과 훈련 부분에서는 호주에서 팀의 리더를 맡았던 인도 출신의 폴을 이어 2등이라고 하였다. 사실 죽어라 외우고 모질게 참았다고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 합법적으로 체류할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기에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HR은 웃으면서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하되 그 결과로 얻어진 나의 지위를 즐겨 보라고 하였다. 무슨 뜻인지 이해는 못했지만 그때의 프랑스 출장은 나머지 14명의 동료들보다는 특별한 대우였었다. 팀장인 HR과 팀이 된 것 그리고 본 업무 이외의 연장되는 부분에서도 합류하였다는 것이 특별한 대우였다. 


긴장감 속에 보낸 탓인지 와인 탓인지 졸음이 몰려왔고 특별한 대우는 내일 오전 07시에  로비에서 만나자고 하며 저녁 자리를 끝냈다. 짐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깨어 그날 입을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드레스 코드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이었고 현지 날씨에 따라서 캐주얼 복장이 허용되기는 하였으나 상의는 항상 재킷을 입어야 했다. 오전 7시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를 발견한 HR은 의례적인 아침 인사 대신 “Good”이라고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로비에서 HR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HR의 엄지가 주시하던 방향에서 나를 향한 또 다른 시선을 느낀 후였다. 국제학술회의를 관장하던 IEEE 소속 사람이었다. 우리는 St. Malo 도심 쪽으로 향하다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은 HR과는 구면인 듯 이런저런 상황들을 장중하게 늘어놓았다. 그때 갑자기 HR이 그의 말을 끊음과 동시에 내게 “이 친구가 지금 내게 무얼 말하려는지 말해봐”라고 내게 물었다. 솔직히 그가 말하는 동안 내가 이해했었던 내용은 관계성이었다. 그가 말한 내용은 주로 누구와 누구 간의 이해관계에서 미국이 취해야 할 본인의 생각이었다.

그 내용을 HR에게 대답함과 동시에 HR은 내게 본인과 함께 학술회의에 참석할 것과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에게는 내 명찰을 준비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어 HR은 그 사람에게 본인과 나는 다른 일정이 있으니 먼저 떠나라고 하였고 HR은 내게 학술회의에서 내가 할 일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였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라”가 내게 주어진 업무였지만 컴퓨터와 친하지 않았던 나로서 PC도 아닌 슈퍼컴퓨터의 학술대회 발표 및 질문 내용을 들으라는 얘기는 이제 프랑스 출장을 끝으로 관두라는 통보처럼 들렸다. 대회장 입구에서 준비된 명찰을 받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전 세계에서 모인 것을 대신하듯 수많은 인종의 참석자들이 모여 있었다. 학술대회의 주된 내용은 슈퍼컴퓨터의 연산 방식이나 기술적인 내용들 위주로 발표하고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질문하는 내용에 있어 연산이나 기술에 관한 질문보다는 내가 듣고 파악하기에도 다분히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질문들이 많았고 그 질문들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미국인이 아닌 외국 참가자 들이었다. 나는 발표보다는 질문에 중점을 두어 메모하기 시작했다. 학회가 끝나는 날까지 참석하지 않아 추 후 어떤 질문들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참석했었던 이틀 동안 나온 대다수의 질문들은 미국의 슈퍼컴퓨터 독점 수출에 관한 것들이 많았고 우리의 업무와도 관련된 질문도 하나 있었다. 대부분 주최 측인 미국에서 참석한 구성원들은 교수나 기계공학 전문가들이지 사업이나 통상과 관련된 질문에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 외 국가의 학회 참석자들 중 몇몇은 본인들의 의문점을 자유스럽게 질문한 것이었으나 그들의 이름이 모두 리스트로 작성된 것은 추후에 알게 되었다. 


레이건 행정부 2기가 완료되어감에 따라 미국에서는 대선 준비가 한창이었고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와의 협의에 따르는 냉전 종식을 준비하고 있었던 미국으로서는 핵무기의 숫자보다는 경제적인 측면과 더불어 정보 전쟁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방산업체들과의 워싱턴 정가의 유착으로 인하여 우방에 대한 무기 수출로 막대한 부와 세계의 리더 자리를 지켜오고 있던 미국 입장에서는 향후 세계의 질서를 잡아가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미국이 현재(2020년) 중국과 치르고 있는 무역 전쟁을 80년대에는 일본이 그 대상이었다. 슈퍼컴퓨터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도 드물었기에 미국이 표준을 만들어 그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이끌어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학회 이틀 째 저녁 나는 HR에게 질문 내용에 관한 보고를 하였고 HR은 질문에 집중한 나의 보고서에 흡족해하였다. 그리고는 포상으로 내일 하루 멋진 휴가를 주겠으니 마음껏 즐겨 보라고 하였지만 나에겐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간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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