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미국 요원 활동 첫 위기 의 긴장감이 풀리기도 전에 나는 다음 출장지 이동 명령을 받았다.
다음 출장지인 사우디아라비아로 가기 위해 간디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를 구해준 요원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겉옷 안 주머니에 고이 보관한 저장장치를 건네 주자 그는 내게 “See you around”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대사관이 미리 준비해둔 공무 여권을 이용하여 별다른 제재 없이 가장 빠른 비행 편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경험한 내가 흥분을 가라 앉히기도 전에 사우디 출장을 함께할 Carrier를 만났다. 그때 HR로부터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도착 후 미 대사관으로 갈 것.”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Carrier를 만나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여러 생각에 잠겨 있었다. 뉴델리 사건과 같은 유사한 사건 발생 시 과연 미 정부는 어디까지 나를 보호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 저장 장치를 그렇게도 애지중지 하는지 더욱 궁금 해지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수도 리야드에 도착하여 HR의 지시대로 대사관으로 향했다.
중동 산유국들 중 친미 성향이 가장 강한 중동의 맹주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나라이며 미국 무기 수출의 최대 고객인 나라이다. 80년부터 8년간 지속된 이란과 이라크간의 전쟁을 중재하여 종식 시키며 다시 한번 그 위상을 과시 하였다.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중시하여 남녀의 구별이 모든 생활에서도 철저하다 보니 백화점의 입구를 달리 한다던가 남녀의 입장 시간을 달리하는 등 일반 서구의 생활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음주에 대한 규율이 너무 강한 나머지 미국 대사관도 외교 행낭을 통해 필요한 주류들을 공급 받았다. 그러다 보니 모든 국가의 대사관을 한곳에 모은 외교 단지를 조성하여 나름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더운 날씨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여러 금기 사항들로 환영 받는 근무지는 아니었다. 그 단지 내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미국 대사관 안에는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 등 상당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에는 Cray 신형이 왕립 지질 학회에 설치되어 있었고 원유 채굴에 주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들었다. 대사관에 도착한 날이 마침 미국 시간으로 대통령 선거 다음날이라 부시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위대한 미국을 다시 만들어놓은 레이건 행정부 8년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전직 부통령과 CIA국장을 지낸 새로운 대통령이 이끌어갈 또 다른 미국을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쯤 유행하던 단어가 있었다. ‘졸부’
1970년대 말 서울 강남이 개발되면서 생긴 신조어 이었다. 평생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짓고 사시던 분들께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돈이 생긴 것이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는, 아니 관리할 능력 밖의 금액을 앞에 두고 고민 하셨을 것처럼 초기 중동의 산유국들도 마찬가지 였다. ‘Black Gold’ 말 그대로 ‘검은 황금’ 이다. 오아시스를 차지하기 위해 낙타를 타고 블랙 텐트라 불리우는 천막생활을 하며 부족간의 치열한 전투를 경험하며 생존해오다 끈적끈적한 검은 액체를 통해 낙타 대신 캐딜락을 블랙 텐트 대신 24시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폄하 하는 것이 아닌 어느 사회에 어떤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문화는 후천적으로 학습에 의해 정착하게 되고 필요에 의한 변화를 거쳐 전체를 위한 규정이나 습관이 되어 정착하게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낙타를 타고 다니다 비행기를 탑승하는 중간 과정을 생략한 결과는 비행기에 탑승 하면서 광주리를 들고 타거나 24시간 사용한 에어컨이나 고속도로를 달리던 캐딜락이 고장 나면 새것으로 교체 후 고장 난 것은 사막 한 가운데에 버려 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 때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국민들이 국가가 제공한 주택에 정착하여 윤택한 삶을 영위하길 원했던 것이었으나 정착하는 삶에 익숙하지 않던 많은 수의 국민들이 집을 버리고 텐트 생활로 돌아가는 경우도 발생하였다고 한다.
당시 중동 국가들 특성 중의 하나가 젊은 관료들이었다.
서방 국가들과 유사한 행정 조직을 갖추고 발전된 국가의 틀을 갖추고 싶은데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인재들이 부족 하였다. 나라에 돈은 많으니 신청만 하면 국비 장학생으로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으로 유학이 가능하였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의 전공을 기준으로 공무원 특채를 통해 인력을 구성한 탓이었다. 방문할 지질 협회의 대부분의 간부들의 나이가 20대 후반이라고 하였다.
나는 제다에 위치한 지질 협회로 출발 전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공항으로 출발하여 지질 학회가 마련해준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하여 서쪽 끝 경제 중심의 도시이자 이슬람 성지인 메카가 있는 제다로 향하였다. 공항에 마중 나온 협회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Cray가 설치된 압둘 아지즈 대학교로 갔다. 사막의 땅에 실로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여 거리 곳곳에 나무들과 꽃밭을 조성해 놓았고 각종 건축물을 올리기 위한 건설 현장들이 많이 보였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 안내된 곳은 한국으로 말하자면 학교 처장실 같은 곳이었다. 잠시 후 전통의상인 소옵을 잘 차려 입은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그는 차를 대접하며 학교의 역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이 나라의 문화려니 여기고 시간이 가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처장님과의 티타임을 마치고 나서야 담당자와 함께 Cray가 설치된 장소로 갈 수 있었다. 대사관에서 말 해준 것처럼 2명의 미국인 기술자들이 있었고 나머지는 거의 학생들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일 하고 있던 미국인들도 미국에서 누군가 온다는 소식에 우리가 들어서자 두 사람 모두 다가와 격한 환영을 해주었다. Carrier에게 저장 장치 연결을 요청하고 나는 그 두 명의 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지질 협회와 슈퍼컴퓨터의 관계에 관하여 물어보았고 그들의 답을 통해 저장 장치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이해 할 수 있었다. 슈퍼컴퓨터의 장점은 연산 능력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원유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와 혹시 “우리 땅에 다른 유정은 없을까, 있다면 매장량이 얼마나 될까?” 가 궁금한 것이었다. 데이터를 입력하여 정확한 결과가 필요 하였고 미국은 그 정보를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