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우리의 수업은...
사람이나 기계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는 기초적인 기술과 조합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으며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객관성’이었다.
수집된 정보는 진위 여부 확인을 위해 데이터를 통한 확인 작업을 거치고 그 기준은 ‘육하원칙’이라고 하였다. 기초적 단계에서만 사람이 필요할 뿐 어느 단계 이후부터는 사람이 아닌 성능 좋은 기계가 결과를 제시하는 방식이라고 하였다. 단계가 올라 갈수록 정보는 정확 해지고 최종 판단은 해당 사안의 결정권자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비록 군사적인 내용과는 무관 할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일 년여 동안 나를 비롯한 뉴욕의 동료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컴퓨터 사용 정보도 어디에선가 어떤 결정을 위한 수집 정보들 중 하나였을 거란 생각에 큰 미국의 힘도 느꼈고 지금 생각해보면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하는 기획력과 추진력에 감탄할 뿐이다. 양방향 페이저로 최신 기술을 접했던 내가 두 번째로 경험할 수 있었던 기술은 사람이 수집한 1차적인 정보와 기술을 취합하여 나온 결과물이었다. 호주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을 당시 보았었던 영상의 수집과 처리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교육받았던 내용을 영상물로 제작한 것이었는데 그 영상에는 사람이 직접 찍은 트럭과 트럭이 지나가는 시골길과 주변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첩보위성을 통해 수집된 사진에는 시골길에 나있는 트럭 바퀴 자국과 그 트럭이 주차한 최종 목적지가 찍힌 사진들이었다. 그렇게 취합된 정보 내용들을 가지고 얻어낸 결과물은 그 트럭에 실린 예상 목록들과 수량이었다. 트럭에 대한 정보는 제조사와 모델 그리고 경로에 따른 바퀴 자국의 깊이를 표시하였는데 그 지역의 토양 성분과 3일간의 날씨 정보를 통합하여 얻어낸 결과라고 하였다. 날씨에 따라 토양의 상태가 달라지고 트럭 자체 무게 대비 바퀴 자국의 깊이나 형태의 차이를 가지고 슈퍼컴퓨터가 계산하여 그 트럭에 어느 정도 무게의 물건이 적재되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샘플과 같은 영상이었으나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수많은 기본적인 데이터가 입력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력과 시간 그리고 자금이 투입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모든 걸 떠나 위성사진의 해상도 만으로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으며 그 호기심은 2년 후 나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위성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 수많은 질문을 했었지만 당시 나의 보안 등급 상 답변을 들을 수 있는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호주에서 보았던 영상이 영화 같았다면 펜타곤에서 본 영상은 만화 같았다. 영상은 존재하는 실체 만을 담을 수 있지만 그림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더 자세하고 세분화된 결과물에 대한 샘플 영상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북한 관련 내용이 하나 있었다. 북한 전 지역에 대한 위성사진을 시작으로 어느 한 지점의 지난 6개월 동안의 변화를 촬영한 사진들을 편집한 내용이었다. 6개월 동안 통과한 수많은 차량들과 그 차량들에서 하역한 물건들, 사람들의 이동까지 상세하게 촬영된 영상 정보를 가지고 얻어낸 결론은 새로운 기지 건설이었다. 기지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을 알아내는 기술력은 내가 접한 또 다른 신세계였다. 북한의 정보 수집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었으나 만약 사람을 통한 정보 수집이 가능한 곳이라면 위성 정보와 함께 세상 어느 곳이든 필요한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었다.
요즘은 더 많은 첩보위성과 발달된 기술로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겠지만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최고의 기술이었다. 당시 NSA가 보내주는 사진이나 영상 자료의 해상도가 지금도 우주에 떠있는 허블망원경이 촬영한 것보다 열 배 이상 선명하다고 하였으니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NASA가 보유한 장비보다 성능이 좋은 장비들을 보유해온 NSA가 그 보유 목록과 성능에 대해서는 NSA(Never Say Anything)처럼 무조건 함구하는 정책을 고수한다.
영국 정보부 MI6의 요원이었고 소설가인 존 르 카레가 한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비밀정보국은 국가의 정치적 건강의 척도이며 잠재의식의 진정한 표현”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잠재의식 속에는 자유 민주주의 수호, 국가안보, 국익 우선이라는 기본 노선이 있지만 그 노선을 지키기 위해 배경에는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는 과거의 역사와 앞으로의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휴일로 일반 사람들은 들떠 있었겠지만 휴일과 상관없이 24시간 365일 움직이는 펜타곤은 식당의 메뉴로 그 분위기를 대신하였다. 각자의 상황에 맞는 크리스마스 기분을 즐기고 있을 때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국적기 중 하나인 PanAm항공기가 공중에서 폭파되어 승무원과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였다.
처음에 미국은 이란을 의심했었다.
그 해 여름에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전투 때문이었다. 쿠웨이트의 원유 수송선을 호위하고 있었던 미군 군함을 이란 해안 경비대가 공격한 사건이 있었고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해군을 급파하여 유도탄 미사일을 이용 이란의 유전 및 군함들을 공격하였었다.
조사 끝에 이란이 아닌 리비아의 시한폭탄을 이용한 항공기 테러로 밝혀졌지만 당시 미군은 인도양에 머물고 있던 항모 전단을 페르시아만으로 이동 이란에 대한 공격을 준비시켰다. 항공모함에 실린 비행기의 대수 만으로도 웬만한 국가의 전체 공군력과 맞먹는 수준이었지만 항공모함은 절대로 혼자 이동하지 않고 잠수함을 비롯한 구축함과 순양함 등 10여 척 이상의 항모 전단으로 움직이기에 우수한 공군력과 첨단 미사일 공격을 통한 초기 교전으로 적을 제압한다. 동시에 가장 가까운 미국의 해외 주둔 공군 기지나 미국 본토에서 출발한 폭격기로 지상군 투입 전 적의 주요 시설을 초토화시키는 전략을 수행하고 있었다.
PanAm 항공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하여 영국 런던을 경유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였다. 뉴욕 동료들의 가장 빈번한 출장 루트였기에 나는 동료들이 걱정되어 뉴욕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동료들 위안부를 물었다. 내 입장에서 다행히도 모든 동료들은 무사하다는 답을 들었다.
8년간의 이란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간접적으로 이란에 무기를 공급한 미국이나 그런 미국과 대립하는 이란이나 각자의 입장에서는 자국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겠지만 절대적인 양심은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뒤숭숭했던 1988년의 크리스마스를 지나 새로운 부시 행정부의 원년이 시작될 1989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함께 교육을 받던 젊은 장교들은 1988년 발족된 CIA 방첩 부서에 보충인력으로 파견된다고 하였다. 기초교육 만을 받은 관계로 격주 주말을 인근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에 위치한 National Intelligence University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고 하였다.
사관학교 출신의 유능하고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젊은 장교들과 서로 행운을 빌어주며 헤어졌다. 나는 1988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토요일까지 재고 조사업무를 마치고 펜타곤숙소에서 새해를 맞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