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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Apr 24. 2023

돈까스 돈키

도쿄 여행기 세 번째

긴자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긴자 마지막 코스로 에쉬레 버터에 들르기로 한다. 도쿄역 방면으로 약 15분 정도를 걸어 가게에 도착하니 이미 선물용 사브레 같은 것들은 동 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버터케이크는 남아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도 오모테산도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더랜다. 오모테산도를 지나는 길에 4-5시쯤 넘버슈가에 들러 선물용 캐러멜 박스를 담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그날 남은 마지막 수량이었단 걸 빈손으로 돌아가는 손님을 보고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역시 한정판의 나라답게 일본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려면 부지런한 새가 되어야 한단 사실을 도쿄 여행 2일 차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돈까스 돈키 2열 감상

저녁에는 돈까스 돈키를 가기로 해서 조금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메구로 역에서 내려 구글맵을 보며 따라가니 '돈까스 돈키는 왼쪽'이라는 표지판이 등장했고 좌회전을 하자 바로 눈앞에 가게가 나타났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말로만 듣던 굉장한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는데 마치 [돈까스 돈키] 연극 무대에 입장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오랜 웨이팅 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돈키를 연극 무대 같다고 한 데에는 평균 이상으로 넓은 오픈 키친이 한몫을 한다. 커다란 오픈 키친을 빙 둘러 ㄷ자형으로 바석이 키친을 감싸고 있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면 주방이 상상이상으로 거대하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뜨거운 기름솥이 있고 주방에 여러 명의 스태프들이 있다 보니 서로의 동선이 엉키지 않으려면 여러모로 넓은 쪽이 안전할 것 같지만 그래도 저렇게 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넉넉한 사이즈. 그런데 의외로 사람이 많은 것에 비해 주방은 신기할 정도로 고요했다. 라멘집에서 으레 듣게 되는 "이랏샤이마세-"하는 활기찬 인사라든지 손님에게 받은 주문을 주방에 전달하기 위해 한 종업원이 큰소리로 선창 하면 그걸 다 같이 복창하는 식의 활기찬 풍경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소화하듯 그곳에는 돈까스 튀김옷을 입히는 사람, 돈까스를 튀기고 자르는 사람, 주문을 받는 사람, 양배추를 준비하는 사람 등 배우 같은 스태프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잘 차려진 돈까스 한상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여러 단계의 작업이 필요한지 궁금하다면 돈키에 정답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돈까스를 만드는데 얼마나 체계적인 분업화가 가능한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돈키이기 때문이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보거나 팟캐스트를 듣는 경우도 있지만 이 날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돈까스 연극 때문에 주방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매우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각자의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루한 줄도 모르고 시간이 잘 흘렀고 얼마 후 잘 차려진 돈까스 한 상이 눈앞에 놓여졌다.



잘 튀겨진 돈까스와 수북한 양배추, 쯔케모노와 미소시루, 그리고 잘 지어진 밥.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는 구성이다. 한 가지 신기한 건 돈키의 돈까스는 바삭바삭한 튀김가루 대신 튀김옷이 잘 입혀진 가라아게 스타일이라는 점. 돈까스가 등장하자 일단 겨자 소스를 콕 찍어 돈까스를 한입 먹어본다. 그리고 곧바로 이번엔 돈까스 소스를 한 번. 호오..? 보이는 것처럼 확실히 기존에 알고 있던 돈가츠와는 다른 스타일이다. 그리고 차례차례 양배추, 미소시루와 밥으로 부지런히 젓가락을 옮기며 눈앞에서 마치 무성영화처럼 반복재생되는 무대를 보다 보면 어느새 수북했던 양배추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돈까스 한 상이 군더더기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가짓수가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지만 메뉴끼리의 조합과 밸런스가 좋다 보니 먹고 나면 항상 한 끼를 알차게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흰밥과 미소시루까지 말끔히 비우고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저녁에는 숙소에서 가까운 츠타야 서점에 가서 오랜만에 이로님의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를 복습했다. 이 책을 보고 지난번 도쿄 여행에선 돈가스 가게 부타구미에 다녀왔고 이번에는 돈키를 방문했다. 읽은 지 오래되어 이제는 처음 읽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책을 읽으며 다시금 '맞아 맞아'하고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돈키보단 부타구미가 더 입맛에 맞았지만 단순히 돈까스 먹는 것을 넘어서 어떤 체험에 가까웠던 돈키를 떠올려보면 역시 둘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그냥 두 군데 다 가보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책에선 총 10곳의 돈가스 가게가 소개되는데 그중 가 본 곳은 부타구미와 돈키뿐이지만 아직 가보지 못 한 곳이 많아 오히려 설렌다. 불확실성과 함께 매번 기존의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게 여행이라지만 하나쯤 확실한 행복이 있으면 아무래도 좀 든든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 돈까스 여행은 언제가 될지, 또 어느 가게를 방문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물음표와 함께 다음 도쿄 여행을 또다시 기약해 본다.






도쿄 이야기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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