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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0. 2024

잠들었던 나를 깨워줄 성냥 한 개비

<경력이 없지 경험이 없나> 저자 유지윤

경력이 없지 경험이 없나 - 예스24 (yes24.com)




두 딸에게 스마트폰은 영혼의 단짝이 되어 버렸다. 떼어낼 수 없기에 두고 보는 수밖에. 그렇다고 방관하는 건 아니다. 가끔씩 스마트폰과 보내는 시간이 의미 없음을 알아차리게 하려고 눈치를 준다. 유리벽을 두른 듯 내가 보내는 눈치는 튕겨진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얼마 안 지나 그 시간을 후회할 때가 올 거다. 아니 큰딸에게는 조금씩 유리벽에 균열이 생기는 듯하다. 




공부에 욕심이 있는 큰딸에게 중간고사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인가 보다. 한 달 전부터 시험공부 중이다. 8과목을 보니 공부할 게 많은가 보다. 주말에도 스터디 카페에서 반나절 이상 보냈다. 평일엔 학원, 주말에는 스터디 카페로 몸이 버거운 눈치다. 피곤해도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큰딸도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보다. 자기 입에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까지 할 정도다. 그때 나는 시선을 지그시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내 눈빛을 알아챈 큰딸도 스마트폰이 문제인 걸 인정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큰딸이 나중에 시간에게 복수당하지 않으면 바란다. 지금을 낭비하면 언젠가 어떤 것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 말이다.  





손에 호미 하나 달랑 들고 있는 것이 내 모습이었다. 호미 삽질 삼매경. 다른 이들은 쉽게 쭉쭉 해 나갔지만, 나는 힘겹게 손에 피가 맺히도록 여러 번 호미질을 해야 겨우 할 수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그럴 때마다 짓누르는 나이의 무게감을 느꼈다. "당신의 불행은 언제가 잘못 쓴 시간의 복수다."라는 말처럼 지금의 어눌함은 그동안 허송세월하면서 보낸 세월 탓임에도 나이 탓만 했다.

<경력이 없지 경험이 없나> 유지윤




나는 마흔셋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시간 개념이 없었다. 매 순간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그제야 나에게 복수를 하는 듯했다. 책을 읽을수록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 의미 없이 낭비해 버린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후회가 큰 만큼 더 나아질 기대도 커졌다. 나이 때문에 망설이면 그것만큼 못난 것도 없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면 나만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야 할 이유 없다. 늦게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당당히 하는 게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러니 큰딸도 조금이라도 일찍 자기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사용하길 바랐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을 정하지 못해 고민이 많단다. 다행인 건 지금 학교 공부에 집중하자는 게 큰딸의 선택인 것 같다. 공부하는 동안 좋아하는 걸 찾게 될 거로 믿는다. 아마도 겨드랑이 사이에 꿈이라는 날개가 조금씩 자라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아직은 자라기 전이라 보여주지 못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근사한 날개 한 쌍을 갖게 될 거로 믿는다. 


누구나 날개를 가지고 있다. 다만 날개를 펼 상황을 맞이하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다. 날개를 펴려면 우선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나에게 숨겨진 날개를 발견하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 다음에 주어지는 선물이다.

<경력이 없지 경험이 없나> 유지윤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러니 큰딸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속 시원이 답을 못 해준다. 어떤 질문에는 쩔쩔매기도 하고 어떤 물음에는 어물쩍 넘기기 일쑤다. 그나마 아는 걸 물어보면 당당하게 답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흔치 않아서 그렇지 입이 터지면 큰딸도 가만히 경청해 준다. 자기도 몰랐던 건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봐 준다. 그렇게라도 딸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다. 또 배움은 교과서에만 있지 않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늘 책을 읽으라고 옆구리를 찌르지만 아직은 먹히지 않는다.






그래도 딸에게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게 어떤 것일지 아직은 모르겠다. 만약 원하는 일을 찾는다면 그걸로 인해 더 빛나는 인생을 살게 될 거다. 그때 나는 딸에게 또 한 번 불꽃을 피울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인생을 살아가는 선배로써,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발밑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몸 안에 성냥 한 갑씩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성냥이 한 갑 아니라 열 갑이라 있어도 당기지 않으면 불꽃은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 당길 수 없는 성냥의 운명이기에 우리는 당겨줄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그 사람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는가?

<경력이 없지 경험이 없나> 유지윤




마흔셋 이전까지 내 앞가림 못하던 나도 지금은 1인 기업가로 거듭나는 중이다. 늦게라도 책을 통해 정신을 차린 덕분이다. 내 인생 내 의지대로 경영해 가는 중이다. 큰딸도 자기 인생을 경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중이다. 스스로 서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말이다. 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에 진심을 다하는 태도가 지금은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몫의 역할은 충분히 해낼 거로 믿는다.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쓰지 않았던 성냥을 당겨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유지윤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때 만난 그녀의 이력은 딱 한 줄이었다. 직장에 다녀 본 적 없었던 '전업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기 계발을 시작한 이유가 사춘기 딸 때문이라고 말했다. 딸의 사춘기를 감당하지 못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러 가지를 배웠다. 유지윤 작가 주변에 머물며 그 과정을 두고 봤다. 내가 엄두도 못 냈던 일을 그녀는 아무렇지 해냈다. 그 덕분에 한근태 작가를 만날 수 있었고 그분에게서 읽고 쓰기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유지윤 작가가 나에게는 성냥을 당겨준 은인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모두 인생을 경영하는 경영인이다. 고객 한 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 뒤에 백 명이 따라온다. 우선 한 명의 마음을 얻는 데 정성을 기울이자. 경영과 사업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경력이 없지 경험이 없나> 유지윤



2년 전 시니어를 위한 컬러링 북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었다. 얼마 전까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스케치북에 적어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그녀였다. 그때 그 모습은 이미 없었다. 출판사 대표로 컬러링 북을 기획하고 제작, 유통, 강의까지 1인 다 역을 해내는 경영인이 되어 있었다. 유지윤 작가의 경영 철학은 고객 한 명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라고 했다. 그 뒤에 수백 명이 따라온다는 게 지론이다.   





유지윤 작가 옆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내 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이어왔다.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유지윤 작가를 통해 이미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믿음이 안 생기는 게 이상했다. 다행히 나도 믿음 덕분에 큰딸과의 관계에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다. 오히려 점점 더 좋아질 거로 믿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은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인생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삶의 통째로 변화시킬 힘이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거의 모든 문제는 책에서 답을 얻을 수 있고 그 책을 쓰는 건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사람이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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