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올려다보고,
땅도 내려다보고

by 김형준

2022. 08. 16. 07:39



'셀프 레벨라이저'는 자동차 뒤쪽에 짐이 실리면 무게를 감지하고 분산해 자체의 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기능입니다. 트렁크에 실린 짐 때문에 뒷바퀴에만 하중에 쏠리면 운전도 불안전해지고 차도 제 역할을 오래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삶은 분명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 마련일 테니까요.


과거에만 집착했던 때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때 그 회사에 지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날 화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게 아니었는데. 다시 그날로 돌아가면 이번에는 분명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이런 후회는 해도 해도 끝이 안 납니다. 누구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기에 후회는 남기 마련입니다. 선택을 했을 당시는 그게 최선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불만이 생기고 잘못된 선택을 합리화할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이유를 만드는 건 쉽습니다. 불평만 가지만 됩니다. 나에 대해, 직장에 대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말 그대로 탓을 하면 쉽습니다. 탓을 하면 적어도 책임에서는 가벼워집니다. 내 삶인데 내가 책임을 지지 않고 남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미래만 바라보고 산 적도 있습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건 아닙니다. 막연한 기대와 희망일 뿐이었습니다. 이력서만 넣으면 어디선가 연락이 오겠지. 시키는 일은 했으니 분명 연봉이 오를 거야. 나름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알아주겠지. 근거 없는 기대일 뿐이었습니다. 경력관리, 자기 계발, 역량 개발은 하지 않고 자기소개서만 그럴듯하게 쓰면 될 줄 알았습니다. 나를 객관화하기보다 인정에 호소하는 꼴이었습니다. 시키는 일은 누구나 다 합니다. 차별화를 만드는 건 개인의 능력입니다. 탁월함을 보인 직원만이 능력을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사람들 틈에 묻어가려는 습성과 이 정도면 되겠지의 안이함에 기대 더 많은 연봉을 기대했습니다. 당연히 더 받을 이 만무했습니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앞에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보다 다음 주에 어디를 가면 좋아하겠지, 다음 달에 여행을 가면 점수를 딸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은 내일이 아닌 지금 옆에 있는 아빠를 원했습니다.


과거 안에 살 땐 땅만 보고 걸었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어떤 모양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미래만 살 때는 하늘만 보고 살았습니다. 발 밑에 돌을 못 보고 걸려 넘어지기 일 수였습니다. 살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는 건 필요합니다. 과거를 통해 반성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잘 살기 위한 동기가 될 테니까요. 더 중요한 건 균형이라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를 살면서 말이죠.


책을 읽으면서 지금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지금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책을 읽으며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건 지금에만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지금에 집중하면서부터 과거에서 발을 뺄 수 있었습니다. 오지 않은 미래와 일어나지 않은 걱정은 오늘을 살면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가족에게 말을 걸면서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주고받습니다. ㅣ지금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내일의 계획을 이야기합니다. 손에 들린 업무를 하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집중합니다. 평가에 연연하기보다 당장 해낼 수 있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지금 내 앞에 놓인 것들에 집중하며 하늘도 보고 땅도 보면 한 발씩 내딛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큰딸은 과거의 후회보다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이 더 클 겁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은 학생으로서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공부도 호기심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점수가 잘 안 나온 시험 때문에 낙담할 필요도, 자신의 가능성을 한정 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점수가 안 나왔으면 앞으로 더 잘하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나씩 배워보면 됩니다. 지난 일은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하고, 다가올 일에는 기대를 품으면 됩니다. 분명한 건 '지금'을 잘 살아내면 과거도 만족스러울 것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선명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기만의 속도로 한 발씩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22. 08. 1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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