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 말고 원칙,
타협 말고 소신

by 김형준

2022. 08. 21. 07:14


빨간불이 들어오면 가던 길을 멈춰야 합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신호에 맞춰 도로를 달릴 때 자신의 안전도 보장받습니다. 신호등은 약속입니다. 약속은 말 그대로 정해놓은 대로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사고가 나는 순간은 약속을 안 지키고 우물쭈물하다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란불이 깜빡일 때 무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주황 불이 들어올 때 서둘러 교차로를 건너려 할 때, 파란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먼저 출발하는 경우 등. 망설일 필요가 없는 상황입니다. 횡단보도는 다음에 건너면 되고, 주황 불에 먼저 서면 되고, 파란불을 보고 출발하면 됩니다. 괜찮겠지 하는 순간 사고가 일어납니다. 반대로 정해진 원칙만 따르면 사고가 날 일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SK하이닉스 주식이 3만 원 일 때 30주를 샀습니다. 푼돈이라도 벌어보고 싶어 없는 돈을 그러모았습니다. 그때는 주목받는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뚜렷한 실적도 선명한 투자계획도 없었습니다. 주식에 문외한이라 직장 동료의 추천을 받아 투자했습니다. 매일 그래프를 보면서 오르기만을 바랐습니다. 기대와 달리 점점 떨어졌습니다. 새가슴이다 보니 작은 움직임에도 어쩔 줄 몰랐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파란색을 보며 한숨만 났습니다. 이대로 계속 갖고 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두어 달 만에 몇만 원 손해보고 다시 팔았습니다. 팔고 나니 미친 듯이 우상향을 그립니다. 마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이동한 것 같았습니다. "좋은 주식을 사고 수면제를 먹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진작에 알았다면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고 성급해하지도, 팔지 말지 망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투자에 대한 원칙도 없었고, 스스로 선택했던 종목도 아니니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5년에 SK하이닉스 주식을 샀었습니다. 2022년, 얼마 전부터 주식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공부를 좀 했습니다. 반도체를 테마로 책 몇 권을 봤습니다. 지금 상황과 향후 전망에 대해 다룬 내용입니다. 책에서 언급하는 몇몇 회사를 눈여겨봤습니다. 점찍어둔 회사의 과거 실적, 투자 계획, 발전 가능성 등 다양하게 검토했습니다. 이번에 주식을 사는 건 장기투자가 목적입니다. 괜찮은 주식을 산 뒤 수면제를 먹을 예정입니다. 월급의 5퍼센트만 주식을 삽니다. 여유가 없는 달은 건너뜁니다. 야금야금 그러모을 예정입니다. 그렇게 모아두면 두 딸이 대학에 들어갈 때쯤엔 등록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번에는 남의 말을 듣지도, 찍어주는 종목을 사지 않았습니다. 순전히 저의 의지대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원칙을 세우고 공부를 하니 시장 상황에서 자유롭습니다. 가끔 잔고를 확인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마이너스 수익률이지만 10년 후에는 분명히 올라 있을 겁니다. 얼마가 오를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보다 단돈 100원만 올라도 성공한 투자라 여길 것입니다. 돈벼락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소신이 맞았다는 것만 입증되면 됩니다.


주식 투자를 예로 들었지만 모든 투자에는 원칙이 존재합니다. 신호등을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투자의 원칙은 자신의 소신을 따르는 겁니다. 모든 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택부터 결과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남의 말을 듣고, 남을 따라 하는 투자가 잘 될 리 없습니다. 설령 잘 돼도 어쩌다 한 번일 겁니다. 우리 삶도 각자의 소신이 필요합니다. 남의 말만 듣고, 남이 시키는 대로, 남을 따라만 가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을 수 있습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소신은 삶의 주도권을 자신에게로 가져오는 겁니다. 소신껏 종목을 선택하고 투자 금액을 결정하고 매도와 매수 타이밍을 정하는 것입니다. 소신을 갖고 투자한다면 설령 실패해도 적어도 남을 탓하거나 주변을 원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태어난 건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나의 소신, 의지대로 사는 게 맞지 않을까요?


사춘기를 지나는 딸은 어쩌면 자신의 모든 걸 새롭게 재 정의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자칫 틀린 선택이나, 다수가 정의해놓은 원칙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정규 교육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고, 일찍 이성에 눈을 떠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마다 지켜야 할 원칙이 존재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면 인생을 걸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하고, 새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많은 걸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호를 무시했을 때 사고가 나듯, 원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대가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전에 충분히 고민했으면 합니다. 주식 투자를 하기 전 충분히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죠. 고민하고 생각해도 그 길이 맞다면 소신껏 행동하면 됩니다. 누구에게 평가받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을 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게 스스로 정한 원칙과 소신에 따른 행동이라면 정답인 인생을 사는 거라 생각합니다. 막상 그 일이 닥쳤을 때 저도 어떤 판단을 내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그때 돼서 딴소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제 손을 떠날 때까지는 제가 정한 원칙을 따라주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2022. 08. 2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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