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수업 종료 전 10분의 자유시간을 주셨고 그늘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셨다.그 당시에는 반에서 1~2등 하던 우등생 시절이었던지라 공부 잘하는 애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셨나 보다.
- 커서 뭐가 될 거니?
- 사람이 될 겁니다.
- 아니, 그런 거 말고....
- 일단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아니다. 네 말이 맞다. 그래.
그때의 나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런 대답을 했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나보다 더 성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선생님이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물으셨다면 다른 대답을 하거나 잘 모르겠다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의 나는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표로 골머리를 앓던 질풍노도의 소녀였으니까.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가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하고 또 다짐하며 살았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달라지는 상황마다 배우는 바는 달라졌을 뿐이다.
Photo by Sookyong Lee
3년째 작은 시골마을에서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내가 그들을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입실 안내를 듣는 태도나 퇴실할 때 남겨진 숙소의 상태 만으로 숨겨진 본성을 유추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정말 각양각색의 히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이 다녀갈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비싼 차를 끌고 와서는 물품 파손과 얼룩을 만들고 말도 없이 그냥 가는 이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아이가 있어 시끄러울까 이것저것 망가뜨릴까 죄송하다고 미리 양해 구하는 모습에 마냥 관용을 베풀고 싶어지기도 한다.또, 다 먹지도 못할 것을 것들을 잔뜩 사 와서 쓰레기 처리도 제대로 안 하고 먹다만 것을 구석에 처박아둔사람들에게 화가 치밀었다가 사 온 음식이 다 먹기엔 너무 많다며 정을 나누는 이들 덕에 사르르 마음이 녹기도 한다.
사실 '인간이 어쩜 이러냐' 싶게 실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단지, 많은 이들이 기본을 지키며 만들어 놓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덩이 같아서 그 대미지와 파장이 클 뿐이다.
나는 '이만하면 잘났지' 생각하며 내 잘 난 맛에 사는 사람이다. 잘난 척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그래도 혹여나 실수할까 싶어 '남 욕하기 전에 나부터 기본을 지키자'를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