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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Sep 06. 2023

내 마음 주치의

나를 보듬어줄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나는 제주에  산다. 그것도 주변이 논 밭인 시골에 산다.


먹는 것에 진심인지라 건강하게 맛있는 것을 나누고픈 마음에 몇 해 전부터 제주 과일을 팔기 시작했다. 해가 거듭되면서 단골도 꽤 늘었다. 특히 주변에 선물하는 단골들이 많은데 더 신경 써달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면 선물하는 이의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져 한번이라도 눈길을 더 주게 된다. 주로 사돈이나 집안 어른들께 선물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번은 특별한 사연과 함께 주문이 들어왔다.

 내 주치의 집에 보내는 거니 신경 써주세요


병원진료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외국에 사시는 분이었다. 순간, 원거리 치료도 가능한 건가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들었다가 이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주치의'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지도 짐작이 갔다. 충분한 휴식으로 나아질 증상인지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처방받아야 할 사안인지, 말 설고 물 설은 해외생활 중에는 나를 아는 모국 전문의의 판단과 말 한마디가 엄청 큰 도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마움이라는 말로 다  수용하기 어렵고 과일상자로 갚을 수 있는 은혜 아닐 것이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탓에 여기저기 이런저런 병원을 많이도 다녀봤다. 환자와 의사사이도 궁합이라는 것이 있어 나에게  딱 맞는 의사를 찾는 것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외국생활도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의료서비스가 제한적인 제주 시골살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식당이며 보건소며 문을 닫는 시골이기에 섬 밖을 나가기 어려운  저녁에는 차로 1시간 거리 응급실이 유일한 빛이요 희망이다. 밤새 무사안녕을 위해 사고위험이 있는 일은 최소화하고 아프지 않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곳에 연고가 없던 나는 병원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고 아파도 상비약으로 버티거나 서울에 갈 때마다 단골병원 투어를 하곤 했다.


제주살이 3년 차에 조금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퇴원 후 계속 치료를 위해 수소문 끝에 한 한의원을 찾아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곳에서 나와 잘 맞는 의사를 찾았다. 그분에게 나는 많은 환자 중 한 명 일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내 몸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적합하게 치료해 주는 참으로 고마운 의사이자 은인이다. 휴일이나 밤중에 아플 수도 있으니 간단한 자가 치료법도 알려주시니 내 입장에서는 항시대기 중인 주치의 같은 느낌이다.

Photo by Sookyong Lee

문득 몸을 고치는 것만큼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내 마음 주치의있었나. 


감사하게도 분야별 담당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완치율 100%를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속 불편한 이슈가 있을 때 제일 먼저 연락하게 되는 사람이다.

함께 있고 싶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이 상황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
상대가 의례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일지라도 내가 마냥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
미안하더라도 부탁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속마음을 터놓고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말이다. 그것이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일적으로 만났지만 묘하게 편안한 누군가 일수도 있다.


나를 보듬어줄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어험난인생을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버팀목이 된다고 생각한다. 단 한 사람인 것도 좋겠지만 분야별 분담체계여도 나쁠 것 없다.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내 가족이고 가족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가족 같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꼭 생물학적 관계나 서류상 얽힌 관계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돌봐줄 수 있는 주치의, 그것이 사랑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마음 주치의님들 항상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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