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는 정리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서랍은 엉켜 있고,
해야 할 일은 늘 한 발 늦습니다.
그것만으로 나는 자격을 잃은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아내다움’, ‘엄마다움’, ‘집 다움’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현실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했으면 됐잖아.”
“이제는 제대로 해야지.”
“그게 그렇게 안돼?”
그 말들 앞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지 못한 나는
늘 죄인처럼 움츠러들고, 자책하며 살았습니다.
이 수필은
그 무력감 속에서도
내가 나를 향해 건넨 작고 단단한 목소리의 기록입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
눌러 담았던 분노,
눈치 보며 삼켰던 슬픔들을
글로 꺼내 놓으며
나는 비로소 다시 살아 있는 느낌을 되찾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싶은 걸 했다는 이유로 괴로워하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면,
한 줄 한 줄이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누구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로 살아 있기 위해,
겨우 붙잡은 몇 가지였다.
하지만 남편은 늘 말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했잖아.
이제는 제대로 좀 해.”
제대로.
그 ‘제대로’란 건 언제나 그의 기준 안에서였다.
일을 해서 돈 벌어오거나,
집이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아들은 스스로 학습 관리가 되어야 하며,
냉장고 안엔 유통기한 지난 게 없어야 하고,
거실에는 머리카락 하나 굴러다녀선 안 된다.
엄마다움, 아내다움, 집 다움.
그가 정한 그 세계에 나는 늘
‘부적격자’처럼 서 있었다.
나는 묻고 싶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했다는 이유로,
나는 왜 죄인처럼 살아야 하나.
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늘 움찔하며 살고 있는 건가.
왜 그가 오는 날이면
청소가 덜 됐다는 이유 하나로
나 자신을 끝도 없이 자책해야 하는가.
나는 진심으로 집이 깨끗하길 원한다.
그렇다.
먼지가 쌓이고, 머리카락이 보이면
나도 괴롭고 절망스럽다.
하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왜 힘드냐고.”
“왜 그렇게까지 지쳤냐고.”
“당신은 지금 괜찮냐고.”
나도 사람이니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건 회사 다닐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늘 일은 많고,
나는 부족하고,
누군가는 불만이고,
나는 그 불만을 달래야 하는 사람이다.
정리를 못 한 내가 잘못인 것처럼,
머리카락이 있는 게 죄인 것처럼,
여자이기 때문에 ?
회사에 다닐 땐, 집안 일, 아이의 공부…
(회사에 다니지 않는 지금은) , 집안 일, 아이의 공부…
그러고 보니 나를 평가하는 항목은 늘 그랬다.
주부 역할!
나는 빵점이다.
오늘도 나는 움찔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그게 정말 네 잘못이야?”
“네가 하고 싶은 걸 했다는 게,
정말 비난받을 일일까?”
“나이 쉰이 되어서야 묻는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걸까? 그가 하라는 걸 안 한 걸까? 내가 비난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물음 하나로
나는 오늘 하루를
겨우 다시 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