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 괜찮아?

by Lamie

아무도 안 묻는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다.

“너, 괜찮아?” “요즘은 어때?”

그런 건 묻지 않는다.

대신 남편은 묻는다. “왜 이렇게 집이 지저분해?”

내 딸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인이 된다.


나는 경력 단절 여성이다. 프리랜서라 부르고 경력 단절이라 말한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번아웃과 구조조정의 접점에서 15년 직장을 나와야했다. 20년 일을 했다. 남는 건 단절 뿐인가?


출산, 육아, 그리고 남편의 발령. 발령. 또 발령.

남편은 주말에 집에 온다. 꼬박꼬박.

온 집이 잔뜩 긴장한다.

그는 집에 오면 잠을 잔다. 아니면 감시한다.

“냉장고 청소는 했어?”

“이건 언제 산 거야?”

“아들 성적표 봤어?”

“아들 숙제 좀 챙겨”

“도대체 뭘 한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오래전에 정했다.

말은, 그에게 닿지 않는다.

닿지 않는 말은 그냥 상처로 돌아온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놓고, 왜 집안일은 못 해?”

그 말이 지겹도록 반복됐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했으니’, 이제 다른 걸 하라는 식이다.


내 마음은 썩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았다.

이혼하고 싶다.

하지만 대학생인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을 생각하면

이 혼란을 어떻게 안겨줘야 하나 망설여진다.

지금도 그녀와 그는 어른스러운 척 버티고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더 흔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미칠 것 같다.

그런데 또 미칠 수도 없다.

미쳐버리면, 남편은 나를 더 쉽게 무시할 것이다.

“봐, 제정신 아니잖아.”

그 말이 들릴 것만 같다.


그는 늘 말한다.

“나 빼고 다 게을러.”

그게 정답이라 믿는다.

누구도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나는 너무 오래 그 말을 듣고 살아왔다.

그게 진짜인 줄 알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침대에 누워 폰을 본다.

수영장에 간다.

그리고는 말한다.

“나는 부지런해. 넌 아니잖아.”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는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이다.

라고 해석한다.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고.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무엇을 못한다고 해서 무책임한 건 아니라고.

그 말을 꺼내면, 또 “변명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다.


내 인생은 갈팡질팡이다.

불안은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나는 지금, 어떤 토끼도 잡지 못한 채

멈춰 선 사냥꾼이다.

이미 깊은 숲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묻는다.

“너, 진짜 괜찮니?“라고.


keyword
이전 01화‘아내다움’, ‘엄마다움’, ‘집 다움’이라는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