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묻는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다.
“너, 괜찮아?” “요즘은 어때?”
그런 건 묻지 않는다.
대신 남편은 묻는다. “왜 이렇게 집이 지저분해?”
내 딸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인이 된다.
나는 경력 단절 여성이다. 프리랜서라 부르고 경력 단절이라 말한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번아웃과 구조조정의 접점에서 15년 직장을 나와야했다. 20년 일을 했다. 남는 건 단절 뿐인가?
출산, 육아, 그리고 남편의 발령. 발령. 또 발령.
남편은 주말에 집에 온다. 꼬박꼬박.
온 집이 잔뜩 긴장한다.
그는 집에 오면 잠을 잔다. 아니면 감시한다.
“냉장고 청소는 했어?”
“이건 언제 산 거야?”
“아들 성적표 봤어?”
“아들 숙제 좀 챙겨”
“도대체 뭘 한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오래전에 정했다.
말은, 그에게 닿지 않는다.
닿지 않는 말은 그냥 상처로 돌아온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놓고, 왜 집안일은 못 해?”
그 말이 지겹도록 반복됐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했으니’, 이제 다른 걸 하라는 식이다.
내 마음은 썩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았다.
이혼하고 싶다.
하지만 대학생인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을 생각하면
이 혼란을 어떻게 안겨줘야 하나 망설여진다.
지금도 그녀와 그는 어른스러운 척 버티고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더 흔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미칠 것 같다.
그런데 또 미칠 수도 없다.
미쳐버리면, 남편은 나를 더 쉽게 무시할 것이다.
“봐, 제정신 아니잖아.”
그 말이 들릴 것만 같다.
그는 늘 말한다.
“나 빼고 다 게을러.”
그게 정답이라 믿는다.
누구도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나는 너무 오래 그 말을 듣고 살아왔다.
그게 진짜인 줄 알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침대에 누워 폰을 본다.
수영장에 간다.
그리고는 말한다.
“나는 부지런해. 넌 아니잖아.”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는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이다.
라고 해석한다.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고.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무엇을 못한다고 해서 무책임한 건 아니라고.
그 말을 꺼내면, 또 “변명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다.
내 인생은 갈팡질팡이다.
불안은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나는 지금, 어떤 토끼도 잡지 못한 채
멈춰 선 사냥꾼이다.
이미 깊은 숲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묻는다.
“너, 진짜 괜찮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