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나 사이의 침묵
딸은 요즘 말을 줄였다.
아침에 눈을 비비며 나오는 아이에게
“잘 잤어?”라고 물어도,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예전에는 자잘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와의 갈등,
좋아하는 아이돌 이야기.
그런 조잘거림이
이 집에서 나를 가장 인간답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딸은 조용해졌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그 문 너머에서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점점 커지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딸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눈치를 보게 했다.
아빠의 표정, 엄마의 기분, 집안의 공기.
아이답게 구는 시간이 줄어들고
어른의 마음을 먼저 읽게 했다.
어느 날, 딸이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아빠랑… 왜 그렇게 말 안 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내가 상처받았다고,
그가 날 무시한다고,
그런 말을 해버리면
딸은 그 둘 사이에서 어디에 서야 할지 몰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좀 바보야. 말을 잘 못 해.”
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순간에
우리는 둘 다 침묵했다.
이해하려는 마음도, 포기하는 마음도
그 짧은 침묵 속에 있었다.
나는 딸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불안정한 다리 위에 겨우 서 있는 사람이다.
한 걸음 잘못 디디면
무너질 것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딸의 방문 앞을 지나친다.
‘잘 자’라고,
‘사랑해’라고
한 마디 말하고 싶지만,
그 말들이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그럴 자격이 내게 있을까 망설인다.
우리 사이엔 말이 없다.
말 대신 침묵이 자란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언젠가, 이 침묵이 다시
말로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