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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그런 건 다 핑계야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목소리

by Lamie


나는 아직 쓰고 있다.

밤이 되면,

온 집이 고요해지면,

내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뭔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건 분노이기도 하고,

외로움이기도 하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목소리다.


나는 그 소리를 글로 옮긴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낙서 같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살아 있다는 증거다.

숨 쉬듯 쓰고,

울 듯 그리고,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생명을 다시 꺼낸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그런 건 핑계야.”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이제 일을 하던가 집안일 좀 하던가, 아이 챙기던가, 책임도 져야지.”

“그렇게 시답잖은 거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그 말은 마치

내 심장 위에 던져진 돌멩이 같다.

툭, 하고 떨어지는데

파장은 끝도 없이 번져간다.

그는 왕복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말하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그는 말하지만, 나는 상처만 입는다.


나는 그에게 기대기를 오래전에 포기했다.

하지만 어쩐지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는

‘언젠가는’이라는 말이 남아 있다.

언젠가는

그가 한 번쯤은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이해하지 않을까.

한 줄 쯤은 마음으로 들어주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훈련이라도 시켰어야 했다.

우리의 대화는 편도일 뿐이다.

나는 하소연하고,

그는 결론만 낸다.


“정리를 하라고… 저게 안 보여?”

“남들은 다 그렇게 안 살아.”

“힘들다는 건 핑계라고.”


그는 모른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지금의 하루를 지켜내고 있는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하루가

얼마나 많은 무너짐을 안고 있는지.

얼마나 나에겐 지난한 싸움인지.


나는 글을 쓴다.

내가 쓰는 문장들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내 몸짓이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 상처의 붉은 가장자리를

나는 오늘도 조용히 바라본다.


나는 아직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닿지 않아도,

그가 읽지 않아도,

이건 내게는

살기 위한, 존재하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런 말을 그에게 하고 싶지가 않다. 핑계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할까 봐. 너 할 일이나 똑바로 하고, 정리하고, 주부 역할을 하거나 회사원을 하거나 하라는 말이 귀에서 웅웅 거린다.


마치 맡겨놓은 걸 다 받아야만 말을 들을 것처럼,

그래야 내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안다.

그건 핑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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