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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Mar 21. 2023

춘분

아직은 반반인 날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해 보니 19도였다. 솔직히 숫자만 보고선 날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질 않아서 ‘19도 옷차림‘을 검색해 보니 후드티, 제법 얇은 긴팔 티를 입어도 되는 날씨라 적혀있었다. 겉옷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하늘색 기모 맨투맨만 입고 나왔는데, 햇살은 따뜻하지만 차가운 바람이 기모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아직 좀 춥네”

아직 가로수에 푸른 잎은 나지 않고 앙상하지만, 매화꽃과 목련은 만개할 준비를 이미 마쳤다. 한 3~4일 사이에 꽃망울이 봄을 알리는 폭죽처럼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카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니 ‘혹시 추우면 말씀해주세요 ‘라고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옷차림은 한껏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스멀스멀 찬기가 도는 날씨인 오늘은 ‘춘분‘이다.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는 날로, 음양의 기운이 반반인 날이다.
낮과 밤의 시간이 12시간으로 같아지고,
추위와 더위가 같은 날이다. “

네 번째 절기인 ‘춘분’은 절기에 관한 글을 쓴다고 마음먹으면서 처음 알게 된 절기다. ‘경칩‘과 ‘동지’에 비해 덜 알려진 절기인 춘분은 완연한 봄이 오는 시기로, 옛날엔 이때쯤 농사를 시작하는 시작 했다고 한다. 머슴을 불러다가 푸짐한 밥과 함께 송편과 비슷한 ‘머슴떡‘을 나이대로 먹이고, 왕실에서는 두 끼 먹던 식사를 세끼로 늘리는 날이었다 하니 춘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절기였던 것 같다.

“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고,
춘분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면 열병이 들어 만물이 자라지 못한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면, 춘분의 날씨로 ‘농점‘을 쳤는데 맑은 것이 좋은 게 아니라 구름이 많고 하늘이 어두운 것을 좋다 여겼다는 점이다.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깨끗한 하늘이었다. 혹시 미세먼지로 탁해진 것도 어두운 걸로 쳐 주시나요? (제발)


“3월은 생각보다 푸르지 않다.“

‘3월‘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새 학기, 시작, 푸르른, 봄 이런 것들이 생각이 났다. 맑고 푸르른 하늘, 무성한 초록 잎이 가득한 나무, 꼬까옷을 입은 사람들… 그런데 생각보다 3월은 푸르지도 따뜻하지도 않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현재 3월 말을 향해 가고 있는데, 오직 소나무만이 초록색을 간직하고 있을 뿐, 가로수는 여전히 벌거숭이 메마른 가지만 보일 뿐이고 매화꽃도 목련도 꽃을 피울지언정 푸르른 잎사귀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3월은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첫 시작이 손을 마주 잡은 그 애매한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초록잎은 생각보다 늦게 볼 수 있는거구나.”

3월이 되면 당연히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초록잎들을 아직 보지 못했다.

관념적 봄이었던 3월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중꺾마 =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

원래 사람들이 쓰던 ‘중꺾마‘의 의미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는데 명언의 대가 박명수 님께서 ‘할명수’ 프로그램에서  ‘중꺾마‘는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언니랑 대화를 하다가, 인스타툰을 보다가, 쇼츠를 보다가 불쑥불쑥 이 말들이 나한테 다가왔다.

손가락으로 휘리릭 쇼츠를 올리자 다음에는 책 ‘빠르게 실패하기’에 대한 영상이 나왔다.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너무 많은 정보를 알아보려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 보라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실행한 후에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것이었다.

일단 나는 시작은 했고, 결과는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있다. 따뜻한 햇살 같은 희망과 음습하고 찬 습기 같은 불안감이 반반씩 공존해 있는 기간이다. 실패 아니면 성공, 당선 아니면 낙선, 합격 아니면 불합격.


“그래, 아직은 ‘반반‘인 날들이다.”

나중에 결과가 나오고 나서도

나는 ’중꺾마‘를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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