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06: 빨간 드레스]
(치익— 카세트테이프 돌아가는 소리. 기자의 숨소리가 쇳소리를 내며 위태롭다. 중간중간 무언가 얇은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섞인다.)
“...여섯 번째 기록입니다. 이건 서울 지하철 2호선, 그중에서도 가장 늦은 시간 운행하는 막차에서 접수된 제보입니다.
제보자는 취기가 오른 상태로 홀로 막차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던 그가, 지하철이 굽어지는 순간 마주한 건... 그 무엇보다 기묘한 드레스였습니다.”
지하철 막차는 고요했다. 야근에 지쳐 한잔하고 올라탄 칸에는 나뿐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몽롱한 기분으로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덜컹-
지하철이 크게 코너를 돌았다. 원심력에 의해 고개가 돌아가며, 저 먼 곳의 구석 칸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긴 머리의 여자였다. 모든 자리가 텅 비어 있는데도, 그녀는 거치른 지하철의 흔들림에 맞춰 휘청거리며 서 있었다. ‘참 별난 여자네.’ 취기에 취해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하철이 다시 한번 코너를 돌았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녀가... 몇 개의 칸을 지나 이쪽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불과 두 칸 앞이었다. 멀어서 자세히는 안 보였지만, 그녀의 빨간 드레스에는 군데군데 흰색 포인트가 들어가 있었다. 독특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려 애썼지만, 불길한 예감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직선 주로...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났지만 탈 사람도, 내릴 사람도 없었다. 이 칸에는 여전히 나뿐이었다.
다시 코너를 도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가 바로 옆 칸에 와 있었다. 문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실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건 빨간색 드레스가 아니었다.
피를 뒤집어쓴, 원래는 하얀 드레스였다. 내가 흰색 포인트라고 생각했던 건, 아직 피에 젖지 않은 드레스의 부분이었다. 그녀의 긴 머리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짓이겨져 있었고, 손에는 피가 잔뜩 묻은 식칼 하나가 들려 있었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지하철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녀와 나만이 하나의 칸에 남게 됐다. 이어폰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점점 커지는 발걸음과 기분 나쁜 숨소리만 들려왔다.
그녀가... 점점 다가온다.
(카세트테이프의 잡음이 극도로 심해진다. 기자의 목소리가 마치 종이가 찢어지는 듯 기괴하게 변했다.)
“...제보자는 다행히 다음 역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미친 듯이 뛰쳐나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빨간색만 보면 발작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기자가 거칠게 숨을 들이쉰다. 삭신이 무너지는 소리)
...내 상태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아까부터 바닥에 떨어지던 종이 조각들은... 내 피부였군요. 거울을 보니 얼굴 피부가 마치 오래된 신문지처럼 누렇게 변해 삭아내리고 있습니다.
(손톱으로 책상을 긁는 소리)
...내 손가락이 떨어진 자리에, 이제는 검은 잉크가 스며 나오고 있습니다. 익명제보들이 내 몸을 타고 흘러, 나를 ‘지워지지 않는 기록’ 그 자체로 만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피부가 다 벗겨지기 전에... 서둘러야 합니다. 아직... 제보가 남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