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26: 영정(影幀)]
(치익— 카세트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이제는 무겁고 느린 호흡 소리에 묻힙니다. 기자의 목소리는 이제 아주 깊은 늪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눅눅하며, 문장을 맺을 때마다 마른 나무가 쩍쩍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섞여 나옵니다.)
“...스물여섯 번째 기록입니다. 이건 평생 현장을 누비며 시신을 수습했던 한 퇴직 경찰관의 마지막 진술입니다.
그는 남들이 기피하는 처참한 자살 현장을 묵묵히 정리하며 '영혼의 청소부'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타인의 흔적을 지울 때마다, 그 그림자들은 조금씩 그의 집 천장과 벽으로 옮겨붙고 있었습니다. 가장 깨끗해진 순간 마주한, 가장 비극적인 진실의 기록입니다.”
강 형사는 평생 고독사나 자살 현장의 보고서를 썼다. 시신을 수습하고 악취를 지우며 그는 늘 죽은 자들에게 예우를 갖췄다. 하지만 퇴근 후 돌아온 그의 집은 결코 안식처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데려온 수많은 영혼이 벽과 천장, 바닥에 얼룩처럼 들러붙어 기괴한 아우성을 질러댔기 때문이다.
수십 년의 무게를 견디다 못한 그는 결국 무당을 찾아가 살풀이를 부탁했다. 작두 위를 달리고 소금을 뿌리는 격렬한 굿판이 끝난 뒤, 마침내 집안을 가득 메웠던 검은 그림자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제... 됐어. 다 떠났어."
정적만이 남은 거실에서 강 형사는 드디어 홀가분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가족사진을 집어 들었다. 평생 일에만 치여 돌보지 못했던, 미안함이 사무치는 아내와 딸의 얼굴이었다.
"미안해... 이제야 다 정리했어. 우리 이제 편하게..."
하지만 오열하던 그의 눈에 사진 모서리에 둘러진 '검은색 리본'이 들어왔다. 그건 가족사진이 아니라 영정사진이었다. 무당이 집안의 모든 영혼을 쫓아냈을 때,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며 곁에 두었던 아내와 딸의 영혼마저 함께 지워진 것이었다.
텅 빈 방 안에서 강 형사는 이제 귀신조차 남지 않은 진짜 '고독' 속에 홀로 던져졌다.
(카세트테이프의 잡음이 이제는 거대한 통곡 소리처럼 울립니다. 기자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듭니다.)
“...그 경찰관은 그날 이후 다시는 보고서를 쓰지 못했습니다. 술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숨졌다고 하더군요.
(바스락... 가슴을 긁는 소리)
...내 상태는 이제 인간의 살갗을 잃었습니다. 아까 가슴이 답답해 단추를 풀었는데, 내 가슴팍 피부가 딱딱한 '오동나무 액자'로 변해 있더군요.
그 액자 안에는 내가 평생 썼던 사회면의 자살 기사들이 빽빽하게 인쇄되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제 내 심장은 박동하는 대신,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비는 상주(喪主)의 완장처럼 차갑게 굳어버렸습니다.
(흐느끼는 듯한 노이즈)
...내 눈에서 흐르는 건 이제 눈물이 아니라 시커먼 상조용 먹물입니다. 기록을... 서둘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