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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서거 80주기

부당하게 늙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by The Emilia Moment Feb 16.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오늘이 윤동주 시인의 서거 80주기라고 한다.

그의 모교인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에서도 시인을 기리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고.

시대와 국경을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시인, 윤동주.


정지용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재조(才操)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 간다.

(중략)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정지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서문 中




영원히 늙지 않는 청년과
그의 시를 다시 꺼내 든 나.

나는 이 세월을
뒤돌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가.

부당하게 늙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붙잡고 있는 하루하루는
흐르는 것인가, 쌓이는 것인가.

여전히 생생하게 아픈 그의 시가,
삶의 의미와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는
각성의 계기를 만들어준다.

나의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그의 시를 펼친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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