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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sory Jan 26. 2020

크로스핏 신입생.

크로스핏 떤배님으로 자라날테다(불끈)

연말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했다.

“우와, 그거 힘들지 않아?” 주변 친구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첫 날 하고 나서는 별로 안 힘들더라고. 근데 다음날 걷는데 나 이러다 내장 터지는 거 아닌가 싶더라니까. 선생님한테 가서 말했더니 괜찮대. 안 터진대.”

크로스핏? 혹했다. 삼십 년 넘게 건강과 힘만큼은 자부하며 힘 쓸 일 있으면 자원해서 무거운 물건도 턱턱 들어올리던 나였는데 몇 달 전 호기롭게 힘쓰다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미련함도 힘에 대한 자부만큼 대단해서 호기롭게 며칠을 버티다 걷기가 힘겨워지고 나서는 도수치료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근육이 너무 없고 코어가 약하다며 근력을 키울 수 있는 운동을 병행해보라 하셨다. 한 번 호되게 아프고 나니 사소한 허리 통증에도 예민해졌다. 똑같은 상황이 찾아올까봐 겁시 났다. 필라테스? 헬스? 발레? 요가?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원하는 곳을 제대로 찾아낼 자신이 없었다. 직접 방문하는 것밖엔 답이 없는데 새로운 환경에 홀로 놓여지는 상황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내겐 그 용기가 또다시 찾아올 허리통증에 대한 두려움보다 컸다.


새로운 곳은 너무 무섭따고오오오


“크로스핏 그거 재밌어?”

“해봐 해봐. 딱 니 운동일 것 같은데. 너는 왠지 재밌게 잘할 것 같다.”

친구 따라 강남 가기를 밥 먹듯 하는 나에겐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는 것보다 친구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집 근처 크로스핏을 검색했다. 마침 1회 무료체험이 가능한 곳이 있었고 연말 뽐뿌까지 와버린 나는 12월 31일 7시 무료체험을 신청했다.


그런데 31일 오후가 다 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거 그냥 가도 되는건가? 신청이 잘 된 거 맞나? 소심한 쫄보는 안 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취소할까. 연말이라 단축 수업을 하나. 별의별 상상을 다 하다 코치님께 전화를 했다. 안 받으시네. 가지 말까. 30분쯤 지나 코치님께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문자가 와서 연락드립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오늘 7시 무료체험 신청한 사람인데요. 신청만 하면 갈 수 있는 건가요? 신청이 된 건지 몰라서 확인차 연락 드렸습니다.”

“네. 편한 복장, 운동화 챙기셔서 시작시간 10분 전까지 오시면 됩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이젠 안 갈 수도 없어져 버렸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무서움을 온 몸에 짊어지고 한 발 한 발 무거운 걸음으로 입구에 섰다. “으아! 으아!” “퍽 퍽 퍽 퍽 탕탕 탕탕” 온갖 험악한 소리와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입구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았다가 소리에 놀라 다시 한 바퀴를 돌아갔다 왔다. 가지 말까. 겨우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었더니 온갖 무서운 운동기구들(역기를 비롯해서)과 땀 범벅이 되어 한껏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알 수 없는 동작들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료체험하러 왔어요.”

“네. 여기 잠깐 앉아 계시면 됩니다.”

이 날은 2019년의 마지막날을 기념해 모든 동작을 31번씩 반복한다 했다. 경험이 전혀 없는 나는 코치님의 배려로 하나하나 동작을 익혀가며 20번씩 줄여 시도했고 다양한 동작들을 배우는 재미가 있어 1시간이 금방 흘렀다.

“해보니 어떠세요?”

“재밌네요. 할 만 해요. 등록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12회에 18만원, 한 달 자유이용권은 20만원이었다. 연말 뽐뿌에 이어 새해 뽐뿌로 한 달 제대로 다녀보자며 2만원 차이를 가소롭게 여기고 등록해 버렸다.



“근력과 코어를 강화하고 싶어요.” 나의 바람을 수줍게 말했더니 코치님은 “저 분 보세요. 근육이 엄청 많다 싶은 몸은 아닌데 자세가 굉장히 안정적이죠? 코어를 잘 써서 그래요. 근육이 많고 적은 것보다 코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게 크로스핏이에요. 그럼 덜 다치면서 몸을 더 잘 쓸 수 있어요.” 하셨다. 띠용! 코어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몸을 제대로 써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힘만 믿고 대책없이 몸을 써왔던 내게 감동적일 만큼 인상적인 문장이라 이런 코치님이라면 내 한 달을 투자할 수 있겠단 믿음이 생겼다.


1월 2일, 다시 운동에 나갔다. 새해 첫 날부터 온 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팠다. 제대로 앉기도 힘들어 아이구 아이구를 반복했는데 코치님이 스쿼트를 시켰다. 맙소사. 겨우겨우 앉았더니 “더 확 앉으세요! 더더더” 를 요구하는 통에 이를 악물고 스쿼트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았다. 몸도 적응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 때문에 2주동안 결석. 오랜만에 찾았더니 다시 신입생이 되어 있었다.


크로스핏은 매일 동작이 바뀐다. 그래서 우선 동작 익히는 시간을 30분 정도 갖고 30분은 시간 제한으로 동작을 반복하는 챌린지를 하는데 아직 초보인 내겐 매일 새로운 동작이라 코치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망부석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어색함을 견디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지만 이걸 넘어서지 못하면 나는 늘 신입생일 테니까 조심조심 물어가며 동작을 익힌다.


목요일에는 나 혼자 여자고 모두 남자였는데 코치님이 자꾸 내 동작을 줄여줬다. 나 말고 신입회원들이 둘 더 있었는데 그들은 남자라 이 정도는 할 수 있겠거니 했고 나는 미리 ½이나 원래 개수에서 10개씩을 줄여 불렀다. 타고난 남녀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믿고 싶은 나는 괜한 오기로 그들과 같은 개수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코치님은 남자 회원들에게 “여자 회원님도 이렇게 하는데 남자로서 자존심이 있죠!”라며 도발했고 ‘내가 저 소리 쏙 들어가게 만든다’며 이를 악문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까지 동작을 해냈다.


이를 악물어 봅니다


하지만 무리였어. 초보에다 근력도 요령도 부족한 내가 무슨 수로 그 개수를 제대로 채운단 말인가. 그래도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 끙끙대며 했더니 코치님이 “너무 힘들죠. 조금 줄여서 할게요.” 하시더라. 으으 분했다. 내가 능력만 있으면 도도하고 멋있게 “아니요? 문제 없는데요?” 했을텐데 바로 “네” 하며 굴복하고 말았어. 역시 무언가를 멋있게 요구하려면 능력이 돼야 하는 거다. 지금의 나에겐 그저 허세였을 뿐.


크로스핏의 모든 동작은 개수 제한이 있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도 ‘조금만 더’를 외치게 된다. 또 혼자하는 운동이 아니다 보니 이 악물고 버티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끝까지 해낼 수 있다. 오래 하신 여자분들 중에는 남성분들과 동등하게 혹은 더 멋있게 해내는 능력자들도 계시던데, 나도 열심히 능력 키워서 코치님이 쉽게 개수 줄이지 못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욕심이 능력을 넘어서서 또 못난 허세가 되지 않도록 차근차근 잘 쌓아가야지. 운동으로 배우는 삶의 지혜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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