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빵
나는 빵을 좋아한다. 특히 빵 중에서도 부드러운 빵을 좋아한다. 갓 나온, 딱딱하지만 속은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포슬 거리는 소보로 빵이라든지,,, 단단한 겉면을 부수면 쫄깃한 떡의 식감을 지닌 깨찰빵이라든지,,, 단단한 크러스트 안에 달콤한 팥이 가득 차 있는 팡콩파이라든지,,,
다이어트 할 때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밀가루 덩어리는 '오늘은 닭가슴살 많이 먹었으니까 괜찮겠지' 라고 자기 위안을 삼게 만든다.
'핫브레드'라는 빵집.들어봤을지 모르겠다. 주로 지하철 역사 안에 있는 프렌차이즈 빵집인데, 이들의 마케팅 방법은 폭력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시각적으로 마케팅을 할 때는 눈을 감으면 되고, 청각적으로 마케팅을 하면 이어폰을 끼면 되지만, 후각으로 마케팅을 해버리면 답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못버티고 영상을 보는, 자제력없는 현대인을 대표하는 나로서는 이런 마케팅에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노출된다. 부끄럽지만 꿋꿋하게 집게를 든다. 뻔뻔하기도 해라.
지하철 문이 열리고 출구를 향해 걸어가다보면 솔솔 나는 빵 향기에 이끌려 어느샌가 집게를 들고, 유산지를 깔고, 전쟁을 대비해 전술을 짜듯 신중하게 쟁반에 빵을 하나 둘 담기 시작한다. 양심에 찔리기에 빵은 최대 세 개로 정하고 담는다.
내 몸에 좋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다. 배우 김혜수 씨는 글루텐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단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김혜수 씨가 대단한 것이다. 나는 보통 사람이다.
'고기와 밀가루를 멀리하면 오래 살 수 있지만 그렇다면 딱히 오래 살 이유가 없다'
라고 하신 라비의 말처럼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집게를 들었다고 위안을 삼아본다.
사실 놀랍게도, 이 글은 핫브레드를 찬양하려는 글이 아니다. 그냥 갑자기 핫브레드에서 갓 나온 소보로가 먹고 싶어서 쓴 글이다.
원래는 GS25 브레디크에서 나온 순우유식빵으로 만든 토스트를 자랑하고 싶어서 쓴 글이다. 너무 예쁘고 맛있게 생겼다. 즉흥적인 P형 인간이기에 이런 것 쯤은 예삿일이 아닌 것마냥 넘어가고 식빵 이야기를 해보자.
원래 식빵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프렌차이즈 봉지 식빵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면, 핫브레드에서 느낄법한 따뜻함이 그곳에는 없다. 온정을 느끼고 싶지만 덩그러니 편의점 진열대에 놓여진 빵을 보면 괜히 서운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빵을 먹은 뒤에 덜 묶인 빵 비닐로 인해서 딱딱해져 더 이상 먹지 못하는 빵이다. 바로 잼을 발라 먹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 삼국지에서 조조가 말했던 '계륵'이라는 말이 딱 이런 상황을 칭하는 것이다. 암튼 식빵 별로 안좋아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브레디크의 순수우유빵은 좀 달랐다. 우선 너무 부드럽고 크기도 다른 빵에 비해 아담한 편이기에 먹는데 부담이 없었다. 물 한방울 넣지 않고 우유로 반죽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드러움이 생기는 것인가, 내 식빵 편견을 부셔주는 브레디크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원래 식빵 한 장을 먹으면 허전하고 두 장을 먹으면 너무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빵은 두 장을 먹어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 아담해서 좋은 건 아니지만 뭔가 귀여움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빵이 참 부드러웠다. 계란물을 풀어 빵을 적시는데 찢어지는 줄 알고 가슴을 졸였다.
아버지가 새해 선물로 받아오신 통조림 햄을 얇게 4조각으로 잘라 구웠다. 사이즈가 딱 맞는게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 통조림 햄처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
이후 햄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올렸더니 천천히 녹았다. 부드러움과 짠맛과 단맛이 섞여 좋은 아침을 제공해주었다.
며칠 전에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런 이유에서 토스트를 만든 것일까? 주인공 존 파브로가 아들한테 토스트를 만들어주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식욕을 자극시키는데, 나도 존 파브로가 된 것 마냥 양파를 굽고 싶었다.
맨 후라이팬에 양파를 구웠는데 내가 생각하는 카라멜라이징은 안되고 조금 탔다. 삶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거를 한번 더 알게 되었다. 그래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토스트 위에 양파를 올리는 내가 좋았으면 오케입니다.
사진 찍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곤 생각을 안했지만 못찍는다고 생각도 안했는데, 이런 거 보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성의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노릇하게 구워진 건 좋지만 큰 사이즈가 부담스럽긴 하다.
그래도 아침을 챙겨먹고 요리를 하고 기록을 남기는 건 나름 뿌듯하다. 작은 성공이 많은 하루하루였으면 하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