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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는 거래가 아니다.

종이 쪼가리로 전락한 1994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by 권사부

며칠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미국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미국 언론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근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제시한 지원금 보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식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분위기는 마치 동네 반상회에서 반장들끼리 다투는 듯한 장면으로 전락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을 앉혀 놓고 다구리를 놓는 모습에 가까웠다.


동네 반상회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자리는 한 국가의 대통령과 또 다른 국가의 대통령이 만난 자리였다. 국익과 외교 전략이 오가는 자리에서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는 사실 자체가 황당 그 자체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절대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들은 패권주의 국가들에게 배신당했고,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최근의 사건들을 보면, 트럼프가 어떤 인물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트럼프의 거래적 접근과 국제 신뢰의 파괴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철저한 거래적 접근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지원한 만큼 우크라이나가 돈을 내거나, 그에 합당한 경제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치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돕고 있다는 듯한 프레임을 만든다. 그러나 이 논리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단순한 시혜적 행위가 아니다.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의 핵전력을 포기했다. 만약 그때 우크라이나가 핵을 보유한 채로 남았다면, 러시아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침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했을 때 실질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고, 2022년 전면전이 벌어진 뒤에서야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지금의 전쟁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단순한 "친절한 행동"이 아니라, 과거에 했던 약속을 이제라도 지키려는 최소한의 책임 이행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단순한 "거래"로 바꾸려 한다. 지원을 했으니 그만큼 우크라이나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안보를 비즈니스화하고, 미국이 지켜야 할 국제적 신뢰를 돈 문제로 전락시키는 위험한 접근이다.




트럼프의 논리는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우크라이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주한미군 주둔이 마치 미국의 일방적 희생인 것처럼 포장하며, 한국이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이미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으로도 한 해 1조 원이 넘는 방위비를 지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군기지 제공, 인프라 지원, 군사 장비 구매 등에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한국이 공짜로 안보를 제공받고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한국 내에서도 일부 극우 세력에 의해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도 지원을 받았으니 대가를 내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안보를 하나의 상품처럼 취급하는 위험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는 돈으로만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맹이란 상호 신뢰와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 단순한 비용 문제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외교, 자주국방 없이는 동맹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분명한 것은 미국이 한국을 영원히 보호해 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의 지원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트럼프의 경우처럼, 대통령 한 명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외교 전략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한국은 자주국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트럼프식 비즈니스 논리로 진행될 경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면, 그 어떤 협상에서도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한국형 맨해튼 프로젝트를 극비리에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핵무장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국가가 극단적 위기 상황에서 자력으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 제안이라 생각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우리가 영원히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스스로 힘을 기르지 않으면,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가 아니라 타국의 전략적 이익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제 정치는 냉정하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트럼프의 태도는 이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사례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어온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단순한 비용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기만 한다면, 결국 언제든지 협상의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한 국가는 보수적인 정치를 제대로 실현하기 어렵다. 보수라는 것은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미래를 위한 확실한 전략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정치가 여전히 친미 라는 태도에만 머문다면, 이는 진정한 보수주의라기보다 의존적 정치일 뿐이다.


트럼프의 태도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과 강한 동맹을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국제정치의 변덕 속에서 언제든 휘둘릴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미국의 보호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외교를 비용 문제로만 접근하는 태도를 버리고, 자주국방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를 시작할 때다.


자고로 보호해 주던 선임이 전역하면, 보호받던 후임의 군생활은 지옥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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