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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30. 2022

52세 주부는 너무 심심하다

다들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걸까

 

  40대 전업주부와 50대 전업주부는 생태계가 다르다.


  96개월을 운영하던 카페를 접고 전업주부가 된 지 딱 50일이 지났다. 처음 며칠은 늦잠도 실컷 자고,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가 어느새 낮잠에 빠고, 혼자 동네 카페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며 커피도 마시고, 친구들도 만나 점심 먹고 수다 떨고 쇼핑하고, 매일매일 노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기엔 너무 심심하다.

 

  나는 52세, 10년 전 직업인 전업주부로 돌아왔는데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중학생이던 딸들은 각각 스물넷, 스물둘이 되어 더 이상 엄마의 관여가 필요치 않다. 오히려 큰애는 대학 4학년 때 취업하고 회사 근처로 독립해 살고 있어서 이미 육아의 대상에서 졸업해 버렸다.

 작은애는 대학교 3학년인데 문과생 취업의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번 가을학기를 휴학하고 지난여름부터 6개월의 체험형 인턴을 하는 중이다. (역시나 돈을 벌고 있다는 뜻)

 남편은 결혼 전부터 남부럽지 않게 부지런한 회사원이었으니 아침 6시10분이면 출근한다. 직장이 멀어 저녁 8시는 돼야 집에 온다.

                                             

  아마 내가 하루 종일 어딜 사라져도 모를 것이다.



  

 그나마 작은애가 휴학 중이라 입학 때부터 거주하던 학교 기숙사 대신 집에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있다. 요즘 기업들은 재택근무 많아서 일주일이면 반 이상의 근무 요일을 집에서 일하는데 그래도 9시부터 6시 넘어까지 열일하느라 바쁘다. 작은애 재택근무인 날에 같이 점심밥을 먹는 게 나의 중요한 일과다.

 월화수목금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실상 할 일이 없다.


 집을 늘어놓는 사람이 없으니 청소할 것도 없다. 무선청소기로 한번 누비면 끝이다. 먼지통에 주로 잡히는 것은 작은애와 나의 긴 머리카락이다.

 뜻한 바 있는 남편이 저녁시간부터는 간헐적 단식을 한다고 선언한 후로 저녁밥을 준비할 것도 없다. 오히려 요리하기 좋아하는 작은애가 저녁을 만들어 주는 덕에 나는 설거지만 끝내면 일이 없다.


 10년 전 전업주부 때의 일상과 너무나 다르다. 그때는 아침마다 아이들 챙기고, 학교나 학원에 데려다주고, 학교에서 엄마들을 부를 때마다 다녀오고, 네 식구가 다 같이 뭉쳐 지내니 집안팎에 치울 것도 많고, 간식거리 야식거리를 사다 나르는 것도 일이고, 이런저런 엄마들 모임도 많고, 두 아이에 맞춰 학원 상담도 수시로 다니고, 틈새 입시 정보도 찾아야 하고, 그야말로 전업주부가 아닌 엄마들은 이 많은 일을 어떻게 해 내나 싶었다.


 50대 전업주부, 다들 뭐 하며 하루를 보내는 걸까?



 

 장보기, 욕실 청소, 주방 정리, 계절 옷 정리 등 주부가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며칠씩 하는 것도 아니다.

 돌봐야 할 자식들은 다 컸고 놀아줄 손주는 아직 없는 우리 동기들은 매일매일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갑자기 전업주부로 돌아와서 아직 부적응 중일 지도 모르고 혹시라도 인생이 무료해질까 봐 미리 두려워하는 걸지도 모른다.

 수십 년을 전업주부로 살지만 매일 할 일이 얼마나 많고 바쁘고 즐거운지 모른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50대일 때 집안일 말고 새로운 것, 해보고 싶던 것에 도전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일주일에 몇 시간씩이라도 일해서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싶다.     

     

 다시 '시간 부자'가 됐으니 아직 비어 있는 추억과 경험의 서랍들을 하나씩 채워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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