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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Feb 20. 2024

귀여워하기는 쉽다

자식도 애견도 그리고 부모도

 개를 데리고 다니면 많은 아이들이 개를 좋아한다. '한번 만져보고 싶다' 하며 혼잣말 겸 나의 허락을 원하는 애들도 있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어 해도 엄마는 결단을 내리기 힘들다. 강아지를 키우자면 대소변 치우고 씻기고 어디가 불편한지 살피고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는 모든 일은 엄마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강아지를 예뻐하기만 하지 돌보지는 않는다.

 숏폼에서 높은 조회수와 댓글수를 얻는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의 모습을 굳이 사람과 비교한다면 여자들이 인스타에 올리는 순간의 모습이다. 

 여자들도 강아지들도 SNS에 올리지 못하는 민낯의 일상이 더 많은 법이다.

 

 누구나 예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 

 원래, 예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기는 쉽다.

 더럽고 힘들고 짜증 나는 것까지 너른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엄마들은 잘 안다.  

우리 집 개쪽이, 이런 눈으로 보면 어쩌란 것인가




 올해로 열다섯 살이 되어, 사람 나이로 치면 일흔이다 여든이다 하는 우리 개가 미운 짓을 많이 한다.

 

 하루종일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챈다. 어느 집 개 부럽지 않게 좋은 거, 맛있는 거를 주는데도 그런다. 내 자식도 안 먹는 것보다는 잘 먹는 게 예쁘지만 이게 먹을 만한 건지 아닌지, 먹기에 좀 큰 지 어쩐지 가늠하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켜버리고 컥컥거리고 또 달라고 끙끙댈 땐 밉상이다.  

 하루가 다르게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어두워지는오로지 후각과 미각만 짱짱하다. 원래도 먹을 것을 좋아했지만 더욱 음식에 집착한다. 요리하는 사람 밑에서 방해를 하며 아무거나 빨리 달라고 짖어대고 바닥을 핥고 다니고 어디에 채소 꼬다리라도 있으면 앞에서 기다린다.

 개가 호시탐탐 노리는 덕에 주방을 말끔히 치우게 되는 장점은 있다.  

 그나마 늙으면서 자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나기에 망정이지 만약 잠도 안 자고 먹을 것만 달라고 달달 볶으면 정말 피곤할 것이다.

   

 그리고 소변을 아무 데나 싸기 시작했다. 배변판과 배변패드의 존재가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보기에 예쁘고 포근하게 앉아 있으려고 깔아 놓은 러그 끝에 쉬를 슬쩍슬쩍 하더니 이젠 가운데에다가도 한다. 편안해야 할 집안에서 생각 없이 발을 내디뎠다가 미지근한 개 오줌을 밟기가 일쑤다.

 늘 거기 서 있을 뿐 죄 없는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에 대고 쉬를 한다. 이러다간 모든 가구 다리에 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겁이 난다.

 그래도 개가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노화 현상 중 하나라고 믿는다. 짜증과 훈육을 포기하고 차라리 소변을 편리하게 치우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작고 늙은 소변 테러리스트에게 화를 내는 나를 본 남편이 쇼핑몰을 뒤져서 세 가지 도구를 사들였다. 그리고 집에 있을 때는 마누라 눈매가 사나워지기 전에 개가 저질러 놓은 것들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우리가 가장 자주 쓰는 것은 손잡이를 당겨 세척하는 기다란 스펀지 걸레다.(맨 오른쪽 제품) 흡수력도 빠르고 세척도 쉽다. 무엇보다 손에 아무것도 묻히지 않고 처리할 수 있어 좋다. 배변 패드에 쉬를 하지 않으니 배변 패드 구입 비용이 줄었고 쓰레기도 만들지 않는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빈대' 이슈가 한창일 때 구입했던 전기 스팀청소기는 소변 자국에 망가진 방바닥을 닦는 데에 잘 쓰고 있다.

3종의 소변 처리 도구

  



 종일 따라다니며 앙앙거리던 노견이 한동안 조용하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잘 자는지 들여다본다.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면 괜찮은지 슬쩍 깨우게 된다.   

 한번은 내가 친구들과 만나 점심 먹고 놀다 들어왔더니 개가 자기 집과 방석을 다 놔두고, 내가 입고 나가려다 벗어 놓은 패딩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머리는 현관을 향한 채로 고개만 들면 가족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위치였다.

 내가 나가자마자 저기에서 나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구나 싶어 짠하고 불쌍했다. 

 개가 오줌을 싸면 치우면 그만, 빨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순간 욱 하는 감정이 터진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때 그 날의 사진을 보면 마음이 순해진다. 좋아하는 고기 장난감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조차 귀엽다. 

 

 문득, 큰애가 기저귀를 떼던 늦여름날의 추억이 생각난다. 며칠을 소변기를 들고 씨름하다가 애한테 어쩌지는 못 하고 혼자 돌아앉아 운 적이 있다. 한참 우는데 애기가 나를 달래줘서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고, 기저귀 떼는 게 뭐라고 엄마가 이렇게 우나 싶어 정신을 차렸다.        

 그런 초보엄마 시절이 있었고 두 딸을 잘 키웠으니 개 한 마리 정도는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젊고 건강하다가 늙으며 달라지는 노견과는 처음 살아보기에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한다.  

현관을 바라보다 잠든 노견은 내가 들어와 사진을 찍어도 모르고 잔다



 

 자식도 반려자도 부모도, 나와 서로 예쁘고 좋을 때 사랑하기는 참 쉽다. 자식이 말을 안 들을 때, 남편이 내 맘을 몰라줄 때, 엄마가 늙고 병들었을 때조차 좋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보통 사람들처럼 나도 자식을 평생 미워하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부모를 끝까지 돌볼 자신은 아직 없다. 그건 내 자식들도 마찬가지일 거고 서운하지는 않다.

 내 양쪽 부모님이 늙고 병들면 돌보겠다는 약속은 못 해도 노견과 함께 살기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마음이 든다. 내가 노견을 보면서 '늙는 과정이 사람과 똑같네' 하는 것처럼,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던 노견과 똑같네' 하며 어느 정도는 '귀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개는 가끔 자다 깨서 나를 보고는 누군지 모르는 표정을 하기도 하고, 좋아하던 공원까지 멀리 산책을 나가지 못 한다.   

 책임의 크기는 다르지만, 노견과 함께 살면서 나는 늙어갈 우리 모습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늙어가는 부모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최애 고기 장난감을 물고 흘러간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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