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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Apr 05. 2024

밖에서 먹을까?

이번 주, 밖에서 만난 얼굴들

 주부들이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 준 밥'이라는 것.  

 반짝이는 봄날은 나다니기에 좋지만 아쉽게도 참 짧다. 어쩌다 보니 4월 첫 주 월화수목금에 다 약속이 있어서 밖에서 점심을 먹었다.


 봄이 가득한 바깥에는 뷰 좋은 식당의 창가 자리마다 만석이다.

 


 

 월요일 - 무조건 오리지널 떡볶이와 매운맛을 삭히는 크림새우

 

 오랜 동네 친구들의 모임에서 누군가가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모두들 신이 났다. 학교 앞 떡볶이에 입문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떡볶이 맛집을 찾아다녔으며 지금까지도 가끔 먹고 싶어 진다는 데에 공감했다.

 체인점이 늘고 있는 떡볶이 브랜드의 본점에 갔는데 손님 중에 우리가 가장 연령대가 높아서 쑥스러웠다. 

 혹시 떡볶이집에 갔는데 이모 같은 분들이 깔깔거리며 먹고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떡볶이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음식도 흔치 않다. 양념 소스와 떡으로 단순하게 조린 것부터 트러플, 생크림을 넣어 요리의 영역으로 격상된 떡볶이까지 다양한 가격대와 레시피를 가진다. 

 이 집에도 다양한 떡볶이가 있었는데 역시 오리지널을 골랐다. 이번에 시장스타일 얼큰칼국수와 떡볶이를 콜라보한 신메뉴가 나왔다니 다음번에 먹어봐야겠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는다면, 함께 떡볶이를 먹는 동안 우리는 어쩐지 소녀인 기분이다.

오리지널 떡볶이와 크림새우




 화요일 - 인도 카레와 난, 그리고 망고가 들어간 샐러드와 라씨 음


 나와 '고 3때 내 짝'은 생일이 나흘 차이다. 그래서 둘의 생일을 동시에 축하하며 함께 점심을 먹었다.

 지난겨울에 수술을 하고 이제 몸을 회복한 친구를 여러 달 만에 보니 무척 반가웠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루한 말에 어느새 절실하게 공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설령 돈이 엄청 많더라도 내가 건강해야지, 내 몸이 아파서 전전긍긍하면 그 돈을 쓰고 다니지 못해 소용이 없다. (배우자나 자식들만 좋은 거다)

 반대로 돈이 좀 없더라도 몸이 건강하면 공짜로 돌아다니며 누릴 거리도 많고 알뜰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우리는 인도 음식점에 갔다. 2인 카레 세트 메뉴가 양이 많아 다 못 먹고 왔다. 배가 불러 못 먹겠다고 음식을 남기고 온 다음에 늘 그렇듯이 그 때 남긴 것이 아쉬워진다.

 

 대학 입시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고3 때의 나와 친구의 모습을 지금의 우리와 오버랩한다. 잘 이어 온 고마운 인연을 성실한 태도로 지켜야겠다. 

 우리는 가치관이 다른 부분도 있고 때로 맞지 않는 면도 있지만 서로 다른 점을 수긍하고 배워가면서 잘 지내고 있다.  

치킨 마크니 카레와 고아 카레




 수요일 - 낙지볶음과 흰밥. 콩나물은 거들뿐

 

 큰딸의 결혼 준비로 한창 바쁜 C 언니와 만났다. 가을 결혼식을 앞두고 전셋집을 막 계약했고 가전과 가구 등 신혼살림들을 준비하는 중이다. 아직 겪어보지 못 한, 자녀의 결혼 준비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 무척 재미있다. 그런데 예비사위가 진짜 그렇게 예쁠까? 싶기도 하다.

 

 언니네 아파트 앞에 있는 식당에 낙지볶음을 먹으러 갔다. 낙지볶음이 주력 메뉴라는 것은 알았지만 가 보기는 처음이다. 전국적인 체인점이니만큼 대중적인 맛은 보장되어 있을 거라 예견했다. 역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적당히 맛있는 낙지볶음이었다.

 언니도 나도 다음엔 남편이랑 애들이랑 와야겠다고 말했다. 

 

 가족이란, 내가 밖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 같이 먹고 싶다고 생각나는 존재다.

 언니는 가을 이후에 그런 가족이 한 명 더 생긴다. 가족이 느는 것을 큰 경사라고 하는 이유는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사람이 하나 더 생겨서'인가 보다.



 목요일 - 나는 그냥 비빔밥, 친구는 돌솥비빔밥


 드디어 둘째의 대입까지 다 끝나서 두 손을 털고 홀가분하다는 친구와 만났다. 군복무를 마친 복학생 오빠와 24학번 신입생 여동생 남매를 보면 친구는 무척 뿌듯할 것이다. 

 두 아이를 다 대학에 보내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을까 싶다가 생각하니 나도 그랬고 다들 그랬다. 애들도 경쟁사회에서 크느라 힘들었고 공부하느라 고생했겠지만, 엄마아빠들의 아득한 시간과 노력은 정말이지 우리끼리라도 칭찬해 줘야 마땅하다.

 

 친구네 동네에 있는 쇼핑몰 식당가에서 비빔밥을 선택했다. 여러 식재료가 고추장과 참기름 아래 어우러지는 비빔밥은 부드러운 목 넘김을 위해 된장국이 곁들여져도 좋고 이 집처럼 뽀얀 미역국이 나와도 좋다.

 

 우리는 벚꽃이 줄지어 선 길을 걷고 사진도 찍었다. 예년보다 일찍 피면 일찍 핀다고 난리, 늦게 피면 늦게 핀다고 난리인 벚꽃이 드디어 만개했다. 일 년 중 딱 일주일 그 얼굴을 보여주는 벚꽃은 제 개화 시기를 두고 야단법석인 사람들의 아우성을 알까.

 

 가톨릭 신자인 친구는 이탈리아로 성지순례를 앞두고 한창 행복한 참이었다.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더 예뻐 보인 친구가 여행을 다녀온 후에 만나기로 했다.

  

 - 이탈리아 특산물 안 사 와도 돼. 그냥 즐겁게 잘 다녀와라.      

토핑 계란이 노란 반숙이면 더 예뻤을 비빔밥



 금요일 - 브런치 카페의 이런저런 메뉴

 

 시간적 여유를 누릴 때는 브런치 카페가 좋다. 식사와 커피까지 한 곳에서 해결하고 집에서 쉽게 하지 못하는 것들을 먹으면서 두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큰애의 고등학교 같은 반 엄마로 만난 동갑내기 친구들을 브런치 카페에서 만났다. 의대 증원 이슈로 의사들의 파업이 한창인 시기에 공교롭게도 한 명은 전공의 아들을, 다른 한 명은 간호사 딸을 두고 있다. 전공의 아들은 인생에서 가장 한가하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간호사 딸은 대학병원에 입사한 이래 가장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물론 엄마들은 서로 불편할 것이 전혀 없다. 각자의 아이들을 잘 챙기고 위로해 주자고 했다.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강의 방책이니까.

무슨무슨 '스푸너'라는 메뉴들과 샐러드

  

  


 

 언제 만나도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맛있는 시간으로 채운 한 주가 지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내 안쪽의 찡그린 마음을 적당히 감추고 그저 웃는 얼굴로 만난다. 이걸 가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끔 만나 맛있는 것을 먹는 동안은 각자가 품은 걱정을 잊는다. 

 그렇게 자주 걱정을 잊으면 걱정의 크기는 분명 더더 작아져 어쩌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모두에게 벚꽃 가득한 봄다운 주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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