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Mar 15. 2024

남편 생일에 전을 부치던 K

 

 지난주에 남편 생일이 있었다.

 아빠에게 진상할 생일선물을 들고 올 테니 벌쓰데이보이가 을 쏘라는 들의 말에 나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그래도 내가 생일 미역국은 끓여줘야겠다 싶어 다음날 소고기미역국을 만들었다.

 

 미역국 한 냄비 끝낸 남편의 생일에 느닷없이 K떠올랐다.




     

 벌써 17,8년 전이다. K는 이웃이었다. 한 층에 열두 가구가 줄지어 있는 아파트였는데 나와 그는 각각 7호와 8호였다.

  K는 나보다 서너 살 어렸고 남편은 나와 동갑 그리고 우리 애들보다 어린 딸 하나가 있었다. 부부가 다 전남 어디가 고향이고 서울로 직장을 다니게 되어 이사 왔다고 했다.

 K는 손이 크고 살림을 잘했다. 언제 찾아가도 말끔히 정돈된 집에서 늘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넉넉하게 음식을 해서 나눠주곤 했는데 맛도 좋고 그 지역의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세 식구 살림에 왜 매번 음식을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해서 이웃이나 그가 나가는 교회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한여름 폭염이 한창이던 어느 날 K가 남편의 생일이라 요리를 했다며 전을 한 접시 가져다.

 전이라니, 이것은 명절 차례상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남편 생일에 전을 부친다는 나에겐 생경했다.

  하루종일 K는 무더위 속에 품이 많이 드는 잔치 음식들을 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옆집에 살지만 한두 번 지나치며 본 그의 남편을 떠올리며, 나는 나보다 훨씬 어린 그가 혹시 모종의 가부장적 억압 같은 것을 감내하며 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나는 기회가 되면 K와 '이 문제'에 대해서 솔직한 이야기를 해 봐야지 했다.

 그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어느 날 K가 그의 집에 좀 와보라고 했다.


 



 집에 가니 큰 상자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붉그죽죽 한 과일을 보여주며 먹을 만큼 가져가라고 했다. 귀한 무화과였다. 그의 고향에서는 길거리에서 파는 흔한 과일이라지만 그 무렵 우리 동네에서는 지금처럼 무화과를 팔지 않았고 어디서 팔고 있더라도 낯선 과일이라 사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난생처음 무화과를 먹었는데 적당히 달콤하고 폭닥하면서 혀 끝에 흙맛다. 나는 무화과에 반했다.

 무화과를 먹으면서 나는 K남편의 생일날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K의 이야기


 언니, 우리 신랑 알지?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와서 언니는 모르나?

 우리 신랑이 열한 살 땐가, 엄마가 오래 앓다가 돌아가셨대. 나는 시어머니 얼굴도 모르지.

 우리 신랑이 막내아들이거든. 큰 아주버님하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어머니가 맨날  죽으면 우리 막내 불쌍해서 어쩌냐고 우셨대.

 생각해 봐. 열 살 먹은 아들을 두고 죽는 심정, 짐작이 가잖아.  

 아무튼 고등학생 때부터 큰 형네 집에서 학교를 다녔대. 형수님과 어린 조카들이 있었는데 그냥 빨리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독립하자 하고 데면데면 살았대.

 그래, 지금 우리 큰 형님이야. 형님도 착한 사람이야, 시동생 데리고 살기가 편했겠어? 다들 그렇게 생각해.

 근데 형님이(지금 우리 형님이 우리 이모 뻘이야), 형님이 상에 계란후라이를 해서 놓는데 세 개씩 부쳐 놓는대. 사람은 다섯인데 항상 세 개만 부친대.

 형이랑 자기 애들 둘 이렇게 세 개.

 아냐, 진짜야, 우리 신랑이 그랬어. 자기는 그 계란후라이가 너무너무 먹고 싶었대. 근데 '형수님, 나도 계란후라이 주세요'라고 말을 못 했대. 형님이 자기랑 시동생을 빼고 세 사람에게 계란후라이를 하나씩 나눠주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대.

 형? 형은 뭐, 막내 비려서 계란을 싫어하는 줄 알았으려나?

 

 언니, 우리 신랑은 아침저녁 밥 먹을 때 계란후라이를 세 개씩 먹어. 웃기지? 진짜 매일 먹어. 그럼 하루에 여섯 개잖아? 계란 한 판 사면 일주일도 안 돼서 혼자 다 먹어.

 부치는 내가 다 지겨워 죽겠어. 근데 자기는 너무너무 맛있대. 아직도 계란후라이가 좋다는데 어째.


 우리 신랑은 누가 생일을 챙겨준 기억이 없대. 그찮아, 무뚝뚝한 그 형이 챙기겠어? 챙기려면 형님이 챙겨줬겠지.

 그래서 내가 울 신랑 생일에 좋아하는 거 다 해 준다! 덥고 힘들게 뭐 이런 걸 하냐고 말은 하면서 엄청 좋아해.

 아예 회사 사람들도 부르고 친구들도 부르라고 하면 그건 안 한대.

 언니, 나는 덥고 힘들어도 우리 신랑 생일에 전 부치고 잡채 무치고 이러는 거 좋아.

 그냥 불쌍해. 쇠도 씹어 먹는다는 나이에 계란후라이도 못 얻어먹고 학교 다니고. 그래서 그렇게 키도 다 못 컸나 싶고.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불쌍해.

 그래, 내가 평소에도 잘해 먹이긴 하지만 생일날은 그래도 생일이니까, 평생 못 해봤다는 생일이니까 더 해주고 싶어.

 

 그래봐야 아직 십 년도 안 챙겨줬는데 뭐.



 나는 내 맘대로 K의 처지를 무례하게 짐작한 것이 부끄러웠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형네 집에 얹혀살며 계란후라이도 맘대로 못 먹고 학교를 다녔다는 얘기는 K 남편의 사적인 기억이고 우리 시대에 있던 일이 아닌 것 같이 비현실적이었지만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것은 맞다.


 얼마 후에 K네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한 후 한 번 우리 집에 왔었다.

 그 후 우리도 이사를 했다. 또 얼마 후에 K가 그 무렵에도 열심히 다니던 교회에서 전도를 하러 여기저기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K는 천상 살림 잘하고 착한 여자였다. 먹고싶던 계란후라이를 먹고 자란 남편에게 매일 여섯 개의 계란을 부쳐주는 여자였다. 생일을 챙겨 적이 없다는 남편을 위해 무더운 여름 방학 중간있는 생일마다 하루종일 음식을 하고 나눠주던 여자였다.


 내 남편의 생일날 갑자기 K 생각이 났다. 그때 대여섯 살이던 딸아이도 이제 스무 살이 넘었을 텐데 K는 아직 남편의 생일에 전을 부칠까?

 

 그냥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사진> 나의 친구, 살림꾼 L의 모둠전


     

  

 

    

 

  


  

 

이전 08화 이런 강릉 어때-엄마와 2박 3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