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Mar 08. 2024

이런 강릉 어때-엄마와 2박 3일

비수기 강릉의 모습

 햇빛이 쨍하는데 비가 오면 여우가 시집간다던가, 호랑이가 장가간다던가. (여우와 호랑이가 커플은 아닐 테고)

 강릉의 어제오늘 날씨는 온 세상 여우와 호랑이가 솔로탈출을 하는지 해가 반짝하다가 비가 뿌렸다가 동시에 같이 했다가 야단법석 중이다.

 후다닥 떠난 '엄마와의 강릉 2박 3일' 초에 일정 내내 비 소식을 예보받았었다. 


 나는 당연히 이번에는 일출을 못 보는 줄 알고 이틀 다 늦잠을 잤다. 아침마다 마가 테라스에서 일출을 봤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엄마가 찍은 이틀 간의 일출





 어느새 70대 중반이 넘어가는 엄마와 둘만의 여행을 처음 왔다. 한참 전부터 엄마와 여행을 한번 가야지 생각했는데 실천이 안 됐다.

 고르지 말고 가까운 데로 다녀오자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더니 그동안의 벼르기가 무색하게 로 떠날 수 있었다.

 

 강원도 강릉.

 강릉멀지도 않고 낯설지도 않고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는 넉넉한 바다도 있어 늘 만만한 여행지다. 아무래도 엄마를 모시고 다니는 책임의 부담감이 낯익은 강릉 덕분에 해소되었다.

 

 모녀의 첫 강릉 식사는 이견 없이 순두부였다. 

 호텔 체크인 후 초당순두부마을에 가려고 했는데 맵을 보니 차로 이동해야 했다. 배도 고프고 가까운 데서 먹자 하고 숙소 앞에 모여있는 순두부전문점 중 제일 깔끔해 보이는 한 곳에 들어갔다. 여기는 특색 있게 치즈순두부, 치즈쫄면순두부 같은 활용 메뉴도 있었다.

 뽕순두부를 먹었다. 맛과 양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메뉴판에 초당순두부가 따로 있었다. 그럼 이 짬뽕순두부 안의 순두부는 초당순두부가 아니란 건지 금했다. 초당순두부 대체 뭔지 검색하니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의 아버지 초당 허엽이 강릉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서 만든 순두부'라 한다. 설마 지금도 순두부를 바닷물로 만들지는 않겠지?

 아무튼 사장님이 직접 만든 순두부라 하셨으니 강릉에서 만든 순두부라면 다 초당순두부 계열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짬뽕순두부



 

 이튿날은 여행의 포인트인 뷔페식 호텔 조식을 먹으려 했는데 비수기라서 뷔페를 주말에만 운영한다고 한다.

 둘째 날 아침밥으로 숙소 인근 식당에서 장칼국수먹었다. 고추장, 된장으로 맛을 낸다는 장칼국수도 이 지역의 고유 음식이 빠지면 섭섭하다.

 동물의 숲 게임에서 잠수해서 잡는 '지중해담치가 아니라 진짜 홍합'이라는 국내산 섭을 넣은 장칼국수를 파는 집이었다. 우리가 들어가니, 식당 문 앞에 놓인 일자형 소파(이게 거기 있는 것도 좀 특이했지만)에서 담요를 덮고 앉아계시던 분이 다소 시큰둥하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본 칭찬 일색의 후기와 달리 칼국수가 짜서 아쉬웠다. 

 비수기인 데다 이른 시간대여서 사장님 같은 달인이 아닌 초심자 직원이 끓였나 보다 하는 합리적인 추측으로 위안을 했다.

섭을 넣은 장칼국수



 어느새 커피의 도시가 된 강릉에 와서 1세대 바리스타의 커피집에 안 갈 수가 없다. 

 재작년 대학로 나들이때 학림다방을 참 좋아하던 엄마를 위해 우중에 렌터카를 빌려 나도 아직 못 가 본 보헤미안 본점을 찾아갔다.

 보통의 카페에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아예 없고 블렌드 메뉴 하나를 제외한 모든 커피가 싱글오리진 원두를 고르면 드립으로 내주는 방식이었다.

 백발 할아버지가 된 1세대 바리스타님이 로스팅실에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커피는 직원분이 내려주었는데 바로 다음 손님부터는 본인이 나와서 내려주셨다. 직원분의 드립 커피가 맛있어서 금방 다 마셨는데 사실 양이 매우 적은 이유도 있다.

 나는 거기까지 갔으니 원조 바리스타 님의 드립 커피를 마셔보려고 추가 주문을 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무슨 커피를 또 마시냐고 하셔서 그만두었다. 엄마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날 위한 (잔)소리다.

 

 대신 원두와 드립백 등 기념품을 사서 돌아왔다.

에스프레소 머신 없이 드립커피만 파는 곳

 




 경포해변에서 강문해변으로 이어지는 바닷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소나무 숲 사이로 걷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파도를 보고 들으며 데크 길 위를 걸어서 밥을 먹으러 가는 즐거움은 보너스다.    

 

 둘째 날 저녁은 엄마가 좋아하는 활어회를 먹으러 갔다. 메인 메뉴인 모둠회와 같이 먹게 나오는 사이드 음식들이 다양하고 푸짐했다.  

 나는 회를 즐기지 않지만 오로지 효심으로 선택한 식당인데 엄마가 무척 좋아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회 좋아해, 하며 내일모레 팔 십인 할머니 혼자 참이슬 한 병에 카스 한 병까지 빈 병을 만드는 걸 보니 대단하시다. 

 뭐 그만큼 건강하시단 거고 내가 맨날 보는 건 아니니까 됐다.    

 

 여행 내내 엄마는, 좋은데 너무 비싸다, 이렇게 비싼 걸, 비싸서 어떻게 해 하는 말이 기본이셨지만 사위가 엄마 사 드리라고 준 돈 다 안 쓰는 거니 걱정 말라고 했다.  

모둠회와 친구들 일부



 막상 강릉을 떠나는 날은 날씨가 맑아지고 기온이 내려갔다. 

 겨울방학이 끝나 개학을 하고 벚꽃철은 아직 오지 않은 여행 비수기라 원래 아침식사를 파는 식당들도 일찍 열지 않는 곳이 많다. 

 그래서 이른 아침의 찬 바람 속에 식당을 찾아 헤매지 않고 가까운 데서 먹으려고 호텔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조식 뷔페는 아니지만 단품 메뉴를 선택해 먹을 수 있었다. 

 여기는 강릉인데 미국식 조식을 먹었다. 우리는 베이컨과 토스트를 먹으며 '강릉식 조식'이라고 이름 붙여서 잘 구성하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눴다.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먹나? 아침부터 매일 이렇게 먹으면 살찌겠다.

 

 엄마가 미국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했다. 

 미드 보면 아침에는 온 가족이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시리얼 박스 꺼내서 우유 부어 먹고 애들은 런치박스에 사과랑 머핀 같은 걸 싸서 스쿨버스 타고 가던데.    

반숙으로 주문한 미국식 조식 일부



 엄마와의 2박 3일은 괜찮았다.

 엄마와 딸은 너무 똑같거나 너무 안 맞거나 둘 중의 하나라서 그저 단순하게 사랑만 하기는 힘든 사이이다. 엄마인 나와 내 딸들의 관계도 똑같지만 서로에게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순간이 자주 있다. 그러다가 절대로 멈추지 못하는 세월을 따라 내 엄마의 나이가 되어 가면서 이해와 양보의 비율이 조금씩 커지는 것 같다.  


 엄마, 즐거웠어요. 

 이번에는 사위 돈으로 다녀왔으니 다음번에는 엄마 아들 돈으로 또 놀러 갑시다. 

 

이전 07화 막걸리 마리아주 탐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