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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Mar 01. 2024

막걸리 마리아주 탐색

아빠와 딸의 픽으로 구성한 저녁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주종은 맥주다. 그다음이 소주 그리고 3위 조사기관이나 시기에 따라 와인과 막걸리가 쌍벽을 이루며 번갈아 차지한다.  

 주량 기준으로 나눌 때 나는 알쓰 그룹에 든다.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나이도 30대 이후다. 그런데도 가볍게 자주 마시기 좋아한다. 나처럼 술을 자주 가볍게 먹는 게 더 몸에 나쁘다고 혀를 차는 친구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어른이 몸에 좋은 것만 먹고살 수는 없다.


 나는 집에서 캔맥주를 주로 마시고 가끔 와인을 마시는데 일 년에 몇 번은 딱 '막걸리'가 생각날 때가 있다. 참 신기하게도 느릿느릿한 비가 하루종일 온다든가(설명하기 어렵지만 내리는 분위기상 딱 막걸리를 부르는 비가 있다), 몸을 쓰는 일을 많이 하여 슬쩍 피곤한 날(머리가 아니라 꼭 몸을 써서 지쳐야 한다) 막걸리가 떠오른다.

 




  막걸리와 어울리는 안주나 음식에 대해 생각했다. 아메리카노가 모든 음식에 다 어울리듯이 막걸리도 그렇다. 그냥 김치만 썰어서 함께 먹어도 딱 맞다. 윤오영의 짧은 에세이에도 흰 수염을 한 노인과 작가가 달을 보며 나란히 앉아 그저 무청김치 큰 사발 막걸리를 마시지 않았나.

 막걸리에 대해 생각하자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피곤하지도 않은데 오랜만에 막걸리를 먹고 싶어졌다. 그날 저녁으로 막걸리를 먹으려고 아침부터 가족들에게 막걸리 안주로 가장 잘 어울리는 게 뭐냐고 물었다.

 남편은 데친 두부와 볶은 김치가 좋겠다고 했다. 딸은 한창 인기 있는 한식주점에서 고추튀김과 막걸리를 먹었는데 그 합이 아주 좋았다 했고 거기에 골뱅이무침을 하되 소면이 아닌 쫄면을 곁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메뉴는 그렇게 정했다.

 막걸리들 중에 남편과 딸이 선호하는 두 가지와 그들이 언급한 안주의 마리아주다.


 두부김치를 풍성하게 하려고 돼지고기를 좀 샀고, 골뱅이무침과 함께 비빌 쫄면사리와 콩나물을 샀다. 고추튀김은 커다란 고추를 가르고 고기와 채소를 다진 소를 넣어 튀기는 거라서 집에서 하기가 번거로웠다. 대신 집 근처에 파는 데가 있나 찾아보았다. 마침 고추튀김이 맛있다는 리뷰가 달린 주점이 가까이에 있어서 고민이 해결됐다.

 냉장고 안에 막걸리 두 병을 잘 넣어두고 딸과 함께 음식을 만들었다. 돼지고기를 볶다가 잘 익은 김치를 넣고 볶고 두부는 먹기 좋게 잘라 데웠다.

 캔골뱅이를 꺼내고 양배추를 가늘게 채 썰고 쫄면사리를 떼어서 삶고 콩나물을 데쳤다. 비빔양념장은 딸이 알아서 맛있게 조제했다.     


 우리 동네 맛집의 고추튀김은 남편이 퇴근길에 픽업해 왔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덕에 거의 배달 라이더 급으로 따뜻한 튀김이 빠르게 도착했다.         

   

안주 만들기

 

 남은 시금치가 한 움큼 있길래 빠르게 시금치된장국도 끓였다. 막걸리는 시금치된장국과도 어울렸다.

 막걸리는 우리나라 전통주의 강자답게 우리 식탁의 웬만한 음식들과 어울린다. 비린 맛의 식재료와는 어울리지 않는 와인과 달리, 막걸리를 마시다가 안주가 모자라면 냉장고에서 멸치볶음 같은 아무 반찬이꺼내오면 된다.

 

 짧은 방학 동안 집에 와 있던 딸이 다음날이면 기숙사로 돌아가야 해서 막걸리 송별파티가 되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는 아이의 계획도 듣고, 어느새 다 자란 아이에게 취업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말을 하며 맛있게 먹었다.

 

 아이가 자라면 함께 있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모든 것을 돌봐야 했던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원할 때에 원하는 바를 해결해 주는 선으로 줄어든다. 물론 마음으로는 여전히 다 해 주고 싶다.

 내가 우리 노부모에게 어떤 음식을 해 달라고 하거나, 뭔가 어려울 때 인터넷으로 찾는 대신 어떻게 하는지 여쭤보면 좋아하시는 이유도 그것 같다. 내가 자식에게 아직도 도움을 준다는 행복이다. 그래서 반대로 자식에게 짐이나 걱정거리가 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시는 거겠지.

  




 옛날 드라마처럼 어릴 때 막걸리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해 본 것도 아니고, 막걸리로 유명한 포천이나 양평에 살아본 적이 없는 데다 알쓰이기까지 하면서 나는 왜 가끔 막걸리를 생각하는 것일까?   

 역시 한국인의 풍속인 '새참' 막걸리의 DNA가 내 혈관 어디엔가 반에 반에 반 사발쯤 남아있는가 보다.


막걸리 마리아주 안주 3종 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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