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있다. 지금 제주에는 동백이 흔하다. 동백꽃들은 아직 봉오리 상태거나 만개하거나 이미 져서 땅에 뿌려져 있다. 동백의 개화 시기는 12월부터 4월까지라니 지금이 딱 그 가운데다.
순서가 다를 뿐, 꽃이 피고 지는 동백나무들
나 같은 관광객이 찾는 제주의 음식은 엇비슷하다. 제주에 여러 번 오더라도 기왕이면 여기만의 먹을거리를 찾게 된다.
첫날은 몸국과 돔베 고기를 먹었다. 몸국은 제주가 아닌 곳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다. 제주의 맛은 평소에 잊고 살다가도여기에 오면 기억이 난다. 현지인의 맛집이라고 소개받은 식당은 인스타에서도 유명했다. 나도 알게 됐으니 더 이상 숨은 맛집은 아니다.
돈사골의 뿌연 맛과 오돌토돌한 모자반의 튀는 식감이 잘 어울린다.
제주 특산, 몸국
서빙용 나무도마에 올려져 있을 뿐 우리 동네 수육과 뭐가 다른지 사실 잘 모르겠는 돔베고기도 먹었다.
미식가가 못 되는지, 나는 집에서 남편이 편백나무 찜통에 쪄 주는 수육이 더 맛있었다.
돔베 고기-'돔베'는 '도마'의 제주방언
스타벅스에서도 제주 스페셜 메뉴를 주문했다.제주 자몽이라고 불리는팔삭을 넣은 자허블(자몽허니블랙티, 그렇다면 이건 팔허블이라고 해야 하나)과 돌하르방을 뚝 떼어 만든 소보로빵 같이 생긴돌보로빵을 골랐다.
제주 스타벅스의 스페셜 메뉴들
저녁에는 숙소의 라운지에서 와인 이벤트가 열렸다. 세계의 여러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무제한 제공하는 '와인 마리아주'에서식사와 와인 타임을 동시에 즐겼다.
나는 칠레산과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을 한 잔씩 마셨다.
와인은 꽤 심미의 영역이라 알듯 모를 듯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는 와인이 제일 맛있다.
와인 마리아주
제주의 외식 라인업에서 흑돼지가 빠질 수는 없어서 둘째 날 점심에는 흑돼지양념갈비를 먹었다.
짚불훈연흑돼지양념갈비(이름 길다)
늦은 오후부터 매서운 찬 바람이 몹시 불어서 흑돼지김치찌개도 딱 좋았다. 김치찌개에 들어간 고기도 흑돼지라니 믿어야지. 고등어구이처럼 집에서 해 먹기 까다로운 메뉴도 함께 시켜보았다. 같이 간 동생이 고등어를 살펴보고 '진짜 국내산'이라 감정했는데 그녀는 우리 동네 농수산물시장을 자주 이용하는 프로주부인 데다 20년 넘게 왕래하는 시댁도 서해안의 유명한 항구도시인 '군산'이니 믿어야지, 또.
고등어구이와 흑돼지김치찌개
둘째 날 저녁은 숙소에서 편안히 편의점맥주와 배달로 받은반반치킨을 먹었다.
유튜브에서 '맥주 맛있게 따르는 법'을 본 내가 호기롭게 콸콸콸 맥주를 따랐다.예상 밖으로 거품이 너무 많아 좀 머쓱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이게 더 맛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 우리 일행 두 명 다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고 해서 잘 넘어갔다.
신기하게 거품은 금방 가라앉고 맥주가 남는다
500밀리 네 개는 좀 많은데 싶었지만 4개에 12000원이라길래 신중하게 골라 온 캔맥주가 결국 두 개 남았다.
우리는 수하물을 부치지 않을 거라서 캔 두 개를 식탁 위에 예쁘게 올려 놓고 숙소를 떠났다.우리 방을 치워 주시는 어느 분이든 하루의 노고를 위안 받으시길.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전형적인 제주 음식이 아니라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선택했다.
마당 있는 옛날 주택을 개조한 식당에서 마라황게카레를 먹었다.근사한 모습에 비해 먹기는 불편했지만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카레가 맛있어서 만족했다.
일본식 카레를 베이스로 하고 제주황게장과 요즘 입맛인 마라 소스를 조화롭게 콜라보한 메뉴였다.
황게의 위엄
여행 중에찍은 사진을 보는데 빨간 동백꽃잎이 무수히 떨어져 만든작은 시내가눈에 든다. 져버린 꽃잎들이 만든 꽃길이잔잔한위로를 준다.
나는 떨어진 동백에게 격려를 보낸다.다음번에 겨울나무가 봄 나무가 될 때 다시 만나자고.
나무가 서 있는 한 동백꽃이 계속 피고 지는 것처럼,사람도 살아있는 한은꽃처럼 피고 지고 또 피고 열매처럼 맺혔다 떨어지지만 또 열리는 법이다.